세상의 달력은 12월의 끝자락에서 멈추고 다시 1월의 희망을 준비하지만, 강원도 영월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한 달이 더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13월의 영월’이라 부른다. 1457년 겨울, 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꽁꽁 얼어붙었을 때, 영월만은 그 동토(凍土)를 뚫고 피어난 뜨거운 의리의 시간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비운의 왕 단종과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영월의 적막함을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청령포의 굽이치는 물줄기와 서글픈 소나무 숲은 500년 전 그날의 비극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과거의 추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누가 끝까지 그 왕의 곁을 지켰으며, 버려진 존엄을 누가 수습(收拾)했는가’라는 인간 본연의 도리에 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날 우리 가슴에 거대한 울림을 남긴다.
당시 세조의 어명은 잔혹했다.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성조차 권력의 이름으로 금지한 절망의 선포였다. 그때 영월의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가 일어섰다. 그는 강물에 떠도는 것이 소년의 육신이 아니라 이 나라가 지켜온 ‘신의’임을 보았다.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선을 행하다 화를 입는다면 이는 내가 달게 받겠다”는 그의 결단은 역사의 시계를 13월의 희망으로 돌려놓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500년 전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우리를 깨운다.
60년의 침묵이 쌓아 올린 ‘의리의 요새’
의리는 한 사람의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헌신적인 침묵이 필요하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암장한 뒤 홀연히 사라진 후, 1516년(중종 11년) 우승지 신상의 보고로 알려지기까지 무려 60년 동안 영월 사람들은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묘소의 위치뿐만 아니라, 엄흥도라는 인물의 존재와 그의 행적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는 사실이다.
조정의 가혹한 추적 속에서도 영월 사람들은 침묵으로 ‘의리의 요새’를 구축했다. 수많은 이웃이 치명적인 비밀을 공유하면서도 단 한 명의 배신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영월이 왜 ‘신의의 고을’인지를 증명한다. 이 보이지 않는 요새는 오늘날 갈등과 분열이 깊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과 통합의 실마리를 주는 거대한 인문학적 유산이다.
동시에 이는 현대 기술경영학이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구성원 간의 숨결을 맞댄 약속과 무한한 신뢰가 서슬 퍼런 감시와 불신의 비용을 소거(消去)하고, 죽음의 공포마저 넉넉히 품어 안은 가장 밀도 높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정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엄흥도에서 엄홍길로 흐르는 ‘수습의 DNA’
영월이 지켜온 의리의 역사는 박물관의 박제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면면히 흘러 후손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에게로 이어진다. 2005년, 에베레스트 ‘데드존’에 홀로 남겨진 동료를 향해 “반드시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명예와 목숨을 걸고 다시 산을 올랐다.
얼어붙은 동료의 시신을 품에 안고 설산을 내려오던 ‘휴먼 원정대’의 모습은 500년 전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업고 눈 덮인 산길을 헤치던 장면과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겹치며 벅찬 감동의 울림을 선사한다. 이러한 역사적 서사와 천혜의 자연을 결합한 웰니스 관광은 강원도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미래 성장 엔진이다. 불신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강원도를 찾는 진짜 이유는 그 땅의 흙과 바람이 기억하고 있는 ‘60년의 고귀한 침묵’이 주는 위로의 울림을 통해 자신의 흐트러진 내면을 수습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힘으로 개척하는 ‘치유의 새 지평’
나는 강원도가 품은 이 고결한 유산이야말로 메마른 현대 문명의 결핍을 채우고, 인간다움을 회복시킬 가장 근원적인 정신적 자산이라고 확신한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적 불확실성은 고단하지만, 우리 강원도민에게는 13월의 비밀을 지켜낸 선조들의 위대한 침묵과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킨 영웅들의 뜨거운 심장이 흐르고 있다. 강원도의 산천은 단순히 구경하는 풍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곳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영혼을 어루만지는 ‘글로벌 웰니스의 요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영월의 흙이 품고 있는 묵직한 신의(信義)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의 원형이자, 미래 사회를 지탱할 유일한 대안이다. 이 땅의 숨겨진 서사가 세상 밖으로 활발히 소통될 때, 강원도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영혼을 수습하는 ‘의리와 치유의 안식처’로 우뚝 설 것이다. 영월의 13월은 이제 강원도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자, 지친 세상을 다시 숨 쉬게 할 정신의 이정표이다. 우리가 가진 이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바탕으로 강원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를 소망한다. 그 약속의 땅 위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으며, 강원도의 눈부신 전성기를 설계해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