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걸출한 인물은 신령神靈스러운 땅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며, 아름다운 산천은 태어난 인물을 훌륭하게 키워 낸다고 하였다. 550년 전 대학자이자 이름난 문신文臣 서거정(1420~1488)은 “산천의 아름다움이 삼한三韓에서 제일인 곳은 강릉이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손으로 만질 듯하고, 풍악산이 등 뒤에 있으며, 오대산은 겨드랑이에 있다”라고 했다. 오늘날 ‘제일강릉’이란 고유 매김말이 생겨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강릉은 신비한 지령地靈과 산천 정기 덕에 고려 충신 이장밀 아들 성무, 선무, 춘무, 양무 4형제는 뛰어난 효행으로 ‘삼강행실’에 올랐고, 태조 이성계 고향 영흥에서 판관을 지낸 박중신의 아들 시원, 시창, 시형, 시행, 시문 5형제는 문무 대과에 나란히 급제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6 부자 대과급제 가문’이란 명성을 얻었다. 그뿐 아니라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문장가 초당 허엽 4남매 허성, 허봉, 허균, 허난설헌은 문장으로 이름나 ‘허씨 5문장 가문’이란 명성을 얻어 이들은 지금까지도 강릉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조선 초기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 딸은 용인이씨를 낳았고, 용인이씨는 조선 제일 여류 문인이자 예술가 신사임당을 낳았다. 사임당이 낳은 대학자 율곡은 화폐 인물이 되었고, 자신도 화폐에 이름을 올려 세계 유일하게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화폐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강릉 산천 기운을 받아 오죽헌이라는 한 건물 한 지붕 아래에서 태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태교(胎敎)를 실천했던 사임당을 거울삼아 일찍이 강릉을 임신과 태교 성지(聖地)로 가꾸어 나갔어야 했다. 사임당은 임신한 그날부터 생명이 태어날 때까지 눈으로는 나쁜 것은 보지 않았고, 귀로는 나쁜 말은 듣지 않았고, 입으로는 예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며, 옳지 않은 일이면 움직이지 않았다. 허균도 “율곡은 어머니 사임당의 태교에서 얻은 바가 많다.”라고 했다.
사임당이 실천한 태교법을 근거로 여성 전문 교육기관에 임신, 태교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걷는 태교 길, 명상 태교 숲, 태교 음악회, 윌빙 태교식, 태교 다도 체험” 등을 개발하여 강릉을 임신, 태교, 출산, 산후조리까지 할 수 있는 도시로 왜 만들지 못했을까.
최고 전문의사를 갖춘 산부인과 병원과 쾌적한 산후조리원도 시설 한다면 앞으로 강릉은 고품격 임신, 태교, 출산, 산후조리까지 할 수 있는 여성친화도시로 각광 받게 될 것이다. 새 소리, 물소리, 솔바람 소리가 어우러진 곳에서 어머니 정성으로 태어난 사람은 강릉을 자랑스러운 고향으로 여길 것이며, 앞으로 이들은 강릉의 미래를 열어 갈 주역이 될 것이다.
지방자치시대 잃어버린 30년, 그동안 우리는 선출된 이들이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면 인구가 늘어 잘살게 될 것이라는 구호만 외치다 한 세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누가 미래를 내다보고 사임당 태교법을 활용한 이 같은 사업을 일찍 추진했더라면 오늘날 강릉은 어떤 도시로 변했을까.
이제 또 요란한 구호가 난무하는 때가 돌아왔다. 당장 눈앞에 보여야만 하는 실적을 앞세워 인기만 누리다 세월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우(杞憂)이길 바라면서 근시안적 안목을 가지고 자치 시대 31년이란 새로운 문을 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나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