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교육부는 라이즈체계를 앵커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지역고등교육정책을 산업기술, 취업, 정주, 성과관리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하였다. 이는 지역과 대학의 연계를 말하지만, 대학을 지역산업 인력공급기관으로 축소할 위험을 안고 있다. 강원도의 라이즈체계에서 이루어진 지난 사업도 그러하다. 인문사회 분야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실제 예산 배분과 평가지표, 사업 설계와 거버넌스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지난 4월 22일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가 주관한 토론회의 선언문 주제는 “인문사회 강국 구현이 AI 강국과 문화강국 실현의 지름길”이다. 이는 인문사회 분야를 지키기 위한 자기 방어적 구호가 아니다. AI 강국의 길은 AI의 효율적 활용뿐만이 아니라, 인간 존엄, 사회적 신뢰, 민주주의, 윤리, 공동체 지속가능성을 함께 묻는 일이다. 이 질문에 응답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사회과학이다.
강원은 수도권과 다른 역사, 자연, 접경과 분단, 농·산·어촌, 폐광, 관광, 고령화, 청년 유출의 복합 현실을 안고 있다. 이는 산업지표만으로 포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략산업 인재를 길러 취업시키는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마을의 기억, 공동체의 관계, 지역 문화, 갈등과 협력 방식, 주민의 삶의 조건을 읽어내는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강원지역 인문사회과학의 존재 이유다.
강원의 대학은 교육부나 강원도에 위임된 사업의 수행기관이나 산업개발정책의 하위기관이 아니라, 강원사회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공적 지식기관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앵커체계를 책임질 강원도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강원형 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대학정책을 단년도 사업관리에서 장기적 공공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학공공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그 안에 인문사회위원회를 독립적으로 두고, 강원의 역사와 문화, 주민자치, 평화와 접경, 산림과 생태, 폐광지역 전환, 돌봄과 고령화, 청년의 삶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정책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인문사회 분야 재원을 마련하여, 지역문제 해석, 공동체 회복, 주민참여, 지역문화 아카이빙, 사회통합, 강원특별자치도 제도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넷째, 대학의 성과평가 기준을 바꾸어, 취업률과 기업협력만이 아니라 지역 공론장 형성, 인문사회·시민교육, 지역 정체성 강화, 갈등 조정, 삶의 질 개선을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다섯째, 강원의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 평생·시민교육을 잇는 인문사회 교육체계를 만들고, 지역에 정주하고 있는 인문사회 연구자가 지역고등교육 정책 파트너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강원 인문사회 지식플랫폼’을 구축하여, 강원의 각 대학 연구소와 학회, 시민단체, 시·군의 자료를 공유하고 공동 의제를 발굴하며, 그 결과를 조례와 예산, 교육과 문화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
강원이 진정한 특별자치도라면, 강원의 고등교육정책 역시 특별해야 한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AI는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지역산업은 어떤 삶을 지탱해야 하는가. 청년이 머물고 싶은 지역은 일자리만 있는 곳인가, 아니면 일자리와 더불어 의미 있는 삶과 관계, 문화와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인가 등등. 강원지역 인문사회과학을 살리는 것은 강원사회의 자기결정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강원의 미래는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과학적 지혜를 기초로 강원을 이해하고, 강원을 말하고, 강원의 삶을 함께 설계하는 인문사회적 힘 위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