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Eroica)’. 베토벤 교향곡 제3번에 붙은 이름이다. 이 곡은 원래 프랑스 혁명 정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바쳐질 예정이었다. 당시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낡은 왕정과 귀족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의 시대를 열 인물로 칭송했다. 실제 악보 표지에는 ‘보나파르트에게 바친다’는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베토벤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크게 분노했다. “그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 독재자가 되려 한다”며 악보 표지에 적힌 이름을 찢어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공화정을 지키던 영웅이 권력을 손에 쥐자 또 다른 지배자로 변해버린 순간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만 여기는 것은 실례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자유,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하려 했던 사상가이기도 했다. 제9번 교향곡 ‘합창’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가 모티브가 됐다. 화합과 인류애를 노래한 것이 젊은 베토벤을 움직인 원동력이 됐다. 베토벤이 꿈꾼 영웅은 권력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로 묶고 시대를 앞으로 이끄는 인물이었다. ▼6·3 지방선거를 통해 또 다른 영웅들이 탄생했다. 시민의 부름으로 당선된 이들은 지난 선거 기간 시민 앞에 고개를 숙이며 변화와 민생, 책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다. 권력을 쥔 뒤 초심을 잃고 시민 위에 서려는 순간, 영웅은 더 이상 영웅으로 남지 못한다.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겸손과 절박함이 권력 앞에서 오만으로 바뀌는 일은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다. 민주주의에서 영웅은 시민이 만든다. 그리고 시민은 필요할 때 언제든 영웅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나폴레옹이 베토벤의 악보에서 지워졌듯, 시민의 기대를 저버린 권력 역시 가차없이 역사 속에서 지워질 뿐이다. 당선의 축하보다 경고를 전한다. 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시길….
허남윤부장·paulh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