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과거시험은 신분의 벽을 넘는 사다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다리는 문패가 됐고, 문패는 다시 권위가 됐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신 설명하던 시대도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능력을 가늠하는 가장 손쉬운 잣대였다. 기업은 학력을 통해 인재를 선별했고, 청년들은 더 높은 문패를 얻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재능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문턱 밖에 머물렀다. ▼중국 고사에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재능이라도 어떤 환경에서는 꽃이 되고, 어떤 환경에서는 잡초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나무보다 화분을 먼저 보려 했다. 열매의 맛보다 뿌리가 놓인 자리를 따졌다. 학벌은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력일 수는 있어도 능력 그 자체일 수는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의 시대는 더욱 냉정하다. 기술은 졸업장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구글과 애플이 먼저 학력의 문턱을 낮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이라는 학력 자격 요건을 전면 폐지한 결정 역시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학력란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역량을 제대로 읽어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는 화려한 날개를 믿다가 추락했지만, 오늘의 청년들은 이름난 깃털보다 스스로 단단해진 근육으로 하늘을 건너려 한다. 기업이 찾는 것도 결국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간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힘, 이력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 말이다. 언젠가 채용 공고에서 학력이 사라진 자리에 실력이 남고, 실력이 남은 자리에 새로운 기회가 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오래 기다려 온 변화의 시작일지 모른다.
권혁순논설주간·hsgwe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