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6·3 지방선거의 총성이 멎고, 강원특별자치도 곳곳에서 민선 9기의 출범을 알리는 축포가 터지고 있다. 지역사회는 새로운 리더십이 가져올 변화의 장밋빛 환상에 들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야말로 단체장의 정치 생명과 지역의 미래를 통째로 흔들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지뢰밭''이다. 막 탄생한 따끈따끈한 새 권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선거라는 거대한 심판을 거쳐 정당성을 부여받은 단체장은 오만해지기 쉽다. 집무실 주변은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얻었거나 줄을 대려는 이들로 붐비게 돼 있다. 공무원 조직은 알아서 기며 몸을 낮추고, 참모들은 단체장의 입만 바라본다. 비판과 견제의 기능은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이 시기 단체장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찬사와 동조뿐이다. “지사님(시장·군수님)의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지역을 살릴 혁신입니다”라는 달콤한 맹신이 난무한다.
이런 상황은 ‘힘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조급한 권력 만능주의 논리가 고개를 든다. “임기 초반, 지지율이 높고 반대 세력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대형 프로젝트를 쳐야 한다”는 참모들의 속삭임은 단체장의 귀를 멀게 한다.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강박증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수천억원이 드는 예산 사업이나 지역의 지형을 바꿀 중대 과제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엉뚱하게 결정되는 대참사를 낳는다. 선거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타당성도 없는 사업들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서막이 바로 이때 열리는 것이다.
지방자치행정은 결코 속도전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엄격한 절차를 밟고,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산을 확보하고, 환경과 교통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며,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지난한 과정은 결코 행정력의 낭비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비용을 치르며 안전장치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의 단체장들은 이 ‘숙의의 시간''을 무능이나 지연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여야 한다는 조급증에 쫓겨 절차를 건너뛰고 속도전을 감행하다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실책을 낳는다. 성급하게 추진되다 법적 소송에 휘말리거나, 주민 반발로 표류하는 대형 국책·지방 사업들의 절대다수가 취임 1년 차에 첫 삽을 뜬 것이 대부분이다. 서두른 대가는 고스란히 주민의 혈세와 행정의 불신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이 화려한 출범의 계절에 단체장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의 공세도, 언론의 비판도 아니다.
그들이 밤잠을 설치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만장일치의 순간''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안건이 이의 없이 통과되며, 주민이 일제히 환호하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단체장이 가장 깊은 ‘장님 타성''에 빠져들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 시그널이다. 반대가 없다는 것은 정책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반대할 자유와 용기가 숨죽인 탓이다. 만장일치의 박수 소리는 단체장의 눈과 귀를 가려 벼랑 끝으로 인도하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와 같다. 새롭게 출범하는 민선 9기 단체장들은 이를 유념해야 한다.
취임 초기의 그 호기롭고 막강한 힘은 영원히 머무는 권력이 아니라, 가장 조심히 다뤄야 할 독배(毒杯)다. 귀에 박히는 쓴소리를 찾아 사방으로 발품을 팔아야 할 때다. “단언컨대 틀렸습니다”라며 단호히 고개를 젓는 강직한 관료를 곁에 두고,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반대파의 목소리에 먼저 문을 열어줘야 한다. 모두가 손뼉 치며 찬양하는 만장일치의 침묵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선(死線)의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눈앞의 속도전을 훈장처럼 자랑하지 말고, 더디더라도 법과 정의를 지켜낸 절차의 결백함을 훈장으로 삼아야 한다. 임기 초의 눈먼 조급함으로 채운 첫 1년이, 뒤이을 3년은 물론 그 땅에서 대를 이어 살아갈 주민의 수십년 미래를 송두리째 도려낼 수 있음을 뼈에 새길 때 성공한 단체장으로 남는다. 이 엄혹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당신이 꿈꾸는 민선 9기의 종착역 역시 앞서 몰락해 간 수많은 단체장의 참담한 퇴장과 다를 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