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단추. 카페의 주인이다.
'단추, 카페'에 필요한 것은 단추와 바늘, 실뿐이다.
남자를 알기 전. 단추는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당최 엄마에게 욕을 먹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열한 번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
이곳의 이름은 '단추, 카페'다. 그러나 단추도, 커피나 음료도 팔지 않는다. '단추, 카페'에서 파는 것은 단추를 이용해 리메이크한 물건들이다. 당신이 새로 구입한 옷을 처음 입고 나온 날. 같은 옷을 입은 사람 둘을 만났다고 치자.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과 같은 옷을 입어서 당신의 기분이 나빠졌다면. 당신은 단추의 고객이 될 소지를 갖춘 사람이다. 흔한 폴로 티셔츠조차 '단추, 카페'를 거치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당신만의 티셔츠로 변신하게 된다. 당신을 당신만의 존재로 인정하고 만들어 주는 곳. 그곳의 이름이 '단추, 카페'다.
그녀의 이름은 단추. 카페의 주인이다. '단추, 카페'에 필요한 것은 단추와 바늘, 실뿐이다. 그녀는 지금 스물하나, 젊은 처녀의 유두가 놓일 지점에 폭신한 딸기 모양 단추를 달고 있다. 하얀 스웨터 위에 빨간색의 두 딸기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가닥가닥의 초록 줄기들은 배꼽 주변에서 시작된다. 도톰한 초록색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결국은. 가슴에 붙은 딸기를 만져보고 싶도록. 그 딸기를 따고 싶도록. 그런 충동이 일어나도록. 그녀는 세심히 스웨터를 수선하고 있다. 이 옷의 주인 아가씨는 이제 싱싱한 딸기 두 개를 가슴에 달고. 어서 그 향기 나는 과일을 덥석 베어 물고 싶어 안달하는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가게 안에는 이십 센티 폭의 선반들이 세 벽을 두르고 있고, 가장 안쪽에 카운터로 쓰는 나무 데스크와 의자가 짝을 맞추어 나란히 들어가 있다. 해부학 실습실에 사람의 눈알이나 간과 같은 것, 아니면 쭈글쭈글한 뇌나 태아 같은 것 등이 담긴 유리병이 나란히 놓여 있듯이, '단추, 카페'의 선반에도 유리병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유리병들은 그녀가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모아온 것들이다. 커피가 들어 있던 병, 잼이 들어 있던 병, 소주가 들어 있던 병, 고급 사탕이 들어 있던 병,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병… 각각의 병들은 모두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그 유리병 하나하나에는 단추가 만든 마분지 택(tag)이 붙어 있다. 택 위에는 주사위 모양으로 몇 개의 점이 찍혀 있다. 그것은 그녀만이 아는 고유한 분류 기호. 단추의 유리병 속에는 여러 가지 질감과 색을 가진 크고 작은 단추들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사람의 손톱이나 발톱을 모아 놓은 병, 이(齒)를 모아 놓은 병, 잘 손질된 뼛조각이 들어 있는 병 따위도 섞여 있다. 그녀는 그런 괴기한 느낌이 나는 단추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녀의 작업에는 토끼의 뼈나 염소의 뿔과 같은 것. 살아 있었으나 지금은 죽은, 삶의 흔적만 간직한 재료도 자주 사용된다.
'단추,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은 단추나 털실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함이나 알록달록함에 반해 긴장을 쉽게 푼다. 그리고는 성급하게 그 포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서로 나누고자 한다. 그러나 카페의 주인은 정해진 강좌 시간에만 단정한 태도로 그들을 대할 뿐. 그들 속으로 섞여 들지 않는다. '단추, 카페'를 찾는 여자들은 결혼 생활의 희와 비를 토하는 것만이 시간의 무료를 이겨낼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시어머니와 남편의 욕으로 시작해 자식 자랑으로 마무리하는 멘트를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카페의 주인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에 끼어드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끝장이나 막장들은 저마다의 드라마가 되어. 너덜너덜한 누더기의 모습으로. 가게의 이곳저곳을 누볐다.
카페의 주인. 단추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같이 누벼지지 않도록, 귀를 닫고 음악에 집중해보려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 음악도 때로는 소음이다. 이럴 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핑!' 수신인은 알 수 없다. '핑? 누구?'라거나 '미친X'와 같은 답이 돌아오면 그는. 그녀의 우주 밖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퐁!' 하고 답장을 보내오면 그는. 그녀와 같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그 답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자신과 얽혀 있는 누군가라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우주 안에 있는 상대라면 그가 누구든. 그 무엇이든. 그와 함께 할 수 있다고.
단추. 그녀의 나이는 마흔둘. 세탁소를 하던 아버지가 별 생각 없이 지어준 이름 덕분에 운명을 따르게 되었다. 얼굴은 예쁘지 않다. 여드름 자국이 숭숭한 피부다. 따로 정돈하지 않아도 가지런한 눈썹과 넓고 두터운 눈두덩이 복스러운 인상을 주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그녀는 예쁘지 않다. 그러나 얼굴과 달리 그녀의 몸은 육감적이다. 조그만 움직임에도 그녀의 젖가슴은 연두부 흔들리듯 부들부들 흔들린다. 통통한 다리는 가윗날 두 개가 차캉차캉 부딪치는 것처럼 균형 있게 움직이고 그 다리를 따라 탱탱한 엉덩이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게다가 그녀는 늘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만 입는다. 색깔은 늘 블랙이다. 블랙의 레깅스에 짧은 팬츠 또는 스커트. 윗옷 또한 늘 타이트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짧은 커트 머리도 그녀의 몸을 돋보이게 하는 데 일조한다.
그녀가 자신의 손님들과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 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목소리 때문이다. 당신이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면. 당신은 풉! 하고 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얼굴과 몸 그 어느 것에도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너무 앳된 소리다. 무표정한 얼굴과 그 목소리의 부조화는 타인에게 그녀를 아주 특별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는 매력이다. 괴이한 그리고 묘한.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미성숙한 아이의 목소리.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의 애완동물 목소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성우의 톤을 상상한다면. 조금 가깝다. 어쨌든 그녀는 자주, 자신의 목소리를 부끄러워했다.
단추는 그녀가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갖가지 색의 실타래가 벽에 꽂혀 있는 풍경 속에서 자랐다. 가족은, 세탁소와 수선을 겸하는 곳. 집이라기보다는 가게의 일부라고 불러야 옳을 구조를 지닌 곳. '은하세탁소'에서 살았다. 거기에서 그들은 살기 위해 빨래를 하는 것인지, 빨래를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구별하지 않고 살았다. 단추의 아버지는 너무 말이 없었고. 엄마는 너무 말이 많았다. 단추는 그들 사이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말 없음과 말 많음 사이를 왕래하며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자신을 조율하며 자랐다.
단추, 단추를 달 때는 단단하게 꿰매야 한다. 매듭은 보이지 않게 마무리하고. 실기둥이 너무 두꺼우면 단추 채울 때 빡빡해서 안 된다. 엄마는 잔소리와 넋두리와 온갖 푸념을 겸해가며 단추에게 바느질을 가르쳤다. 바느질은 여자라면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조신하게, 말끔하게. 그것이 단추, 엄마의 모토이자 좌우명이었다. 단추는 여고생이 되고부터 재봉틀을 다루었다. 가내에서 전수받은 솜씨만으로 웬만한 바지 기장이나 허리 수선을 할 수 있게 되자, 엄마는 말만 하고 바느질은 단추가 알아서 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나 단추는 엄마와 같이 조신하고 말끔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처럼 하얀색 무명실로 있는 듯 없는 듯 단추를 다는 것은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와이셔츠의 하얀 단추를 파란색이나 초록색 실을 써 색다르게 다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난데없이 원색의 실로 단추가 꿰매진 와이셔츠를 받은 동네 아주머니들은 질색을 하며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단추의 엄마를 몰아세웠다. 세탁소로 되돌려 보내진 그녀만의 셔츠는 그녀를 슬프게 했다. 엄마는 저것한테 맡긴 내 잘못이라며. 단추에게 욕을, 욕을 늘어놓고는. 하얀 무명실로 다시, 조로록. 조신하고, 말끔하게. 셔츠의 단추들을 달았다. 단추, 그녀는 어쩌면 그저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진 단추를 견뎌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단추의 초등학교 1학년 가을. 막 여덟 살이 된 때였다. 단추와 같은 동네에 한쪽 눈을 실명한 남자애가 살았는데, 그 아이는 검은 눈동자 없이 하얀 색만 남은 눈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그가 그의 커다란 손으로 등교하던 단추의 코와 입을 막고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끌려가는 동안 단추의 발뒤꿈치가 바닥에 턱, 턱, 턱 하고 가끔 닿았다. 그가 한 구석에 멈춰 서자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의 허연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단추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휙 돌아서 뛰어가 버렸다. 그녀도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나니. 그제야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나서 울음이 터졌다. 그 이후에 그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흰색 눈동자의 기억은 끈질기게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단추는 흰색을 비롯한 모든 밋밋한 것들을 보면 그 흰 눈동자가 생각나 거북함을 느꼈다. 그 거부감은 차차 '은하세탁소' 밖으로 난 작은 문을 두드리는 단추의 몸부림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문은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크게 쾅! 하고 닫혀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닫힌 문을 원망하며 도망치듯 자신 안으로 숨어 버렸다. 문 안쪽에서 그녀는 내내 잠을 잤다. 오래오래 자고 나면 자위행위가 하고 싶어졌다. 문을 단단히 잠그고 그녀는 자위와 자해 사이의 퍼포먼스를 행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친구들에게 손바닥의 두꺼운 피부를 옷감 삼아 바늘로 땀을 떠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손바닥의 두꺼운 피부에는 바늘을 아무리 찔러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피도 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녀의 놀이에 대해 징그럽다고도 했고. 신기하다고도 했다. 바늘과 실로 몸의 일부에 모양을 내는 것. 그것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녀 자신은 그 행위에 큰 의미 부여를 했다. 바늘에 가는 실을 꿰어 손바닥에 세모나 네모, 별 모양의 무늬를 만들어내면 그녀는 자신이 왠지 멋있어지는 것 같았다. 때때로 그녀는 허벅지나 배에도 살금살금 바늘땀을 떠 보았다. 자신의 몸을 천 삼아 단추를 붙이고 수를 놓는 것이 재미있기만 했다. 그것도 시시하면 손가락 마디 끝에 바늘을 고정시켜 붙이고 자신의 몸을 긁었다. 짜릿한 쾌감. 상처는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 냈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지도 못하고 취직도 하지 못한 채 좁고 낡은 방에 방치되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이란 게 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모는 그녀가 진학을 하는 것보다 취업해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길 바랐고, 그녀는 취업보다는 우선,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은하세탁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매일이 반복되는 '은하세탁소' 안에서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은 너무 자명했다. 우울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귀찮아지면 그녀는 크고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는 꼭꼭 오므려 공기가 통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면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이 세상을 채웠다.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 근처의 비닐이 조금, 펄럭거렸다. 그 소리마저도 듣기 싫어 숨을 참는다. 하나. 둘. 셋. 넷… 서른아홉까지밖에 세지 못했는데. 숨이 막힌다. 어쩔 수 없이 팍, 하고 숨을 내뱉는다. 땀이 난다. 그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고 다시 이 고통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무 살의 백수로 살던 여름 어느 날. 낙서를 하고 있었다. 글자는 없고 그림뿐이었는데 수십 겹의 지그재그이거나 달팽이집처럼 돌고 도는 원이거나 한없이 이어지는 세모 안의 세모 안의 세모와 같은 것들이었다. 현기증 나는 반복이 지겨워. 무심코 손에 잡힌 테니스공을 벽을 향해 던졌다. 던져졌다가 다시 튕겨 돌아왔다가. 벽과 방바닥을 가로지르며, 탕, 탕, 탕, 탕, 탕. 공 튀는 소리가 울렸다. 마음 같아서는 테니스공이 아니라 단추 자신의 머리를 뽑아내어 벽을 향해 집어 던져 터뜨리고 싶었다. 영원히 되돌릴 수 없게. 머릿속에 있는 골이 터져 흥건한 액체와 흐물흐물한 단백질 덩어리들이 흘러넘치고 거기에 구더기가 들끓었으면 좋겠다고. 무슨 일이든지 화끈하게 한 번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고요했다. 똑딱똑딱 초침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안에는 남들은 모르는 시계가 살고 있었다. 아침 5시와 저녁 7시의 시계. 그 시계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침마다 동네를 돌며 세탁물을 수거하기 위해 그리고 세탁되거나 수선된 옷들을 가져다주기 위해 맞추어 놓은 시계와 일치했다. 그 시간이 되면 그녀 안의 시계가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살아난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어서 나가라고. 나가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들을 찾고 자신 안의 낡은 것들을 어딘가로 내보내라고 부추긴다. 그녀는 그 시계를 거부할 수 없다. 빨간 구두를 신으면 춤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시계의 똑딱거림이 멈출 때까지는. 설령 제자리를 맴돌더라도 나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남자를 알기 전. 단추는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당최 엄마에게 욕을 먹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사람을 만나는 데 두려움을 버린 것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이 자신과 연결된 사람인지 아닌지 테스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같은 우주에 사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녀는 누구하고나 함께 지냈다. 그게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가리지 않았다.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낮이든 밤이든 아무런 조건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할 때. 그녀, 단추는 상대가 어떤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즉각 알아차리고 곧 연주에 돌입하는 탁월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런 마술 같은 관계가 신비하고 즐거웠다.
그녀는 지금까지 열한 번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 탯줄로 연결되는 관계. 자신의 몸 안에 줄을 만들어 기생하는 생물을 그녀는 용납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다.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매번 가위로 탯줄을 싹둑 자르고 매듭을 짓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는 그 꿈이 깨기 전에 서둘러 중절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단추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실이 배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과 같은 우주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찾고 또 만났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우연의 길을 따라갔다. 때로는 그녀 안의 시계가 그 낯선 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은하세탁소'에는 천과 실과 단추가 널려 있었다. 단추는 홈패션 리폼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인터넷을 이용해 작은 소품을 만들 수 있는 'DIY Kit' 패키지 판매를 시작했다. 그녀의 'DIY Kit'은 단순하고 귀여워 바로바로 품절이 되는 인기 품목이 되었다. 리폼 이벤트에 몇 차례 당선되어 이름이 알려지자, 문화센터 강습 의뢰도 들어왔다. 처음에 그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의외로.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달변으로 변신하곤 했다. 인터넷 판매와 문화센터 강습으로, 꽤 많은 돈이 모였다. 그녀는 작은 도시의 작은 아파트 상가에 보증금 없이 작은 셋방 가게를 얻었다. '단추, 카페'라고 간판을 만들어 붙였다.
그녀는 단순한 식탁보 하나도 새로운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때로는 거친 억새를 엮어 동남아 풍으로 때로는 도일리(doily)를 이용해 공주 풍으로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패치를 붙여 서양식 조각보 형식으로. 그녀는 부서지고 낡은 것에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부여하는 재능이 있었다. 한가한 시간에 모이는 주부들은 그녀의 바느질이 독특해서 좋다며 지리멸렬한 자신의 집도 그와 같은 참신한 물건들로 채워 변화를 주고 싶다고. 어떡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자신에게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는 색을 선택해 그것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에 어떤 식으로든 매치해 보라고 권해본다. 하지만 기대는 없다. 한가함을 즐기는 주부들은 대체로. 모험을 좋아하지 않기에.
언니, 커피도 안 팔면서 왜 가게 이름을 카페라고 지은 거야? 커피도 팔면 좋을 거 같애. 좀 싸게 팔면 여기 수업 듣는 사람들 많이들 마실 텐데. 가게 이름도 카페잖아. 같이 팔아 봐. 아뇨. 됐어요. 여긴 그냥 바느질을 하는 곳일 뿐예요, 저는 커피도 다른 음식도 잘 만들 줄 몰라요. 원하시면 정수기가 안쪽에 있으니 간단히 믹스 커피 타서 드세요. 누가 정수기 있는 거 몰라서 물어? 커피도 안 팔면서 가게 이름을 왜 카페라고 지었는지가 궁금한 거지. 그냥 편히 쉬었다 가듯, 배우고 가시라는 뜻이에요. 별거 없어요. 근데, 있잖아. 언니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너무 신기해. 꼭 우리 애하고 말하는 것 같다니까. 호호.
첫 번째 시간이죠. 제가 여러분께 처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추는 단순히 옷의 부자재로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단추는 그 재료와 종류가 다양한 것 이상으로 그 기능도 다양한 물건이에요. 단추는 무언가를 붙여 주는 기능을 넘어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그 자체로 황홀한 미적 도구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단추를 옷이나 천에만 붙일 수 있다는 편견을 먼저 버리셨으면 좋겠어요. 가방이요? 네 물론 가방에도 단추를 붙이죠. 하지만 상식을 깨는 생각은 아니네요. 가방이나 신발 아니면 귀고리나 목걸이 같은 장식성이 강한 물건들에 단추를 붙여 온 것은 오래되었어요. 그보다, 제가 상식을 깨는 다른 예를 좀 들어 볼까요? 단추는 그릇에도, 가구에도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심지어는 사람의 몸에도 붙일 수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단추. 카페의 주인이다.
'단추, 카페'에 필요한 것은 단추와 바늘, 실뿐이다.
남자를 알기 전. 단추는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당최 엄마에게 욕을 먹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열한 번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
극단적인 예를 좀 섞긴 했지만 그만큼 단추의 활용도가 높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단추란 그야말로 다기능적이고 다활용적인 물건이죠. 오늘 여러분은 초급 첫 번째 작품으로 싸개 단추를 이용한 머리끈을 만들 건데요.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가끔 옷과 머리끈의 천을 통일한 사람들 보면 좀 답답하다 싶으면서도 어떻게 맞췄나 하는 생각 드신 적 있죠? 싸개 천을 이용하면 옷뿐 아니라 신발이나 가방, 아니면 커튼이라든지 이불과도 같은 무늬로 단추를 만들 수 있어요. 통일감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오늘 제가 준비한 천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체크와 하트 무늬 그리고 잔꽃 무늬가 있는 리넨(linen)이에요. 싸개 단추를 만들려면 기계가 필요한데요. 오늘은 일단 제 것을 쓰기로 해요. 혹시 싸개 단추를 좀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는 분은 기계를 하나 장만하셔도 좋겠죠? 하지만 수강하시는 동안은 제 싸개 단추 제작 기계를 늘 사용하실 수 있도록 비치해 놓을 테니 마음껏 쓰세요.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저녁 강의가 끝나고 난 뒤. 그녀는 가게 안의 조명을 모두 끄고 데스크 위의 컴퓨터 화면만 파랗게 남겨 두었다. 그리고는 기다리던 전화를 받는다. 단추는 지금 전화기 저편의 상대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고 있다.
자 옷을 벗어요. 아니, 팬티는 벗지 않아요. 어둠 속에서 그녀는 조용하고 느릿하게 낮의 일상을 정리한다. 됐나요? 좋아요. 그럼 이번엔 차렷 자세를 해보세요. 트렁크 팬티를 입었나요? 삼각팬티를 입었나요? 삼각이군요. 좋아요. 이제 손이 팬티를 통과하도록 해보세요. 네. 차렷 자세를 하는데 손이 팬티를 통과하게요. 천들을 차곡차곡 개 제자리에 넣고. 주문한 포장 재료들도 정리함에 보기 좋게 치워 놓는다. 그런 후에는 손바닥을 펴세요. 쫙 하고 펴요. 됐나요. 그럼 그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하고 팔꿈치를 몸에 좀 더 밀착시키세요. 네 허리에요. 그리고 무릎을 붙여요. 가능하면 몸에 틈이 없도록 하세요. 팔과 다리를 몸에 꿰매 붙였다고 생각하고 모두 몸에 꼭꼭 붙여요. 이번에는 퀼트 반 회원들이 빌려 쓰고 남겨둔 골무들을 유리병에 모아 담는다. 퀼팅에는 역시 스테인리스 링 골무가 가장 편하다. 그녀는 쨍그랑 소리가 나게 마지막 골무를 넣고 유리병의 뚜껑을 닫는다. 당신의 몸은 일직선이 되었어요. 숫자 1처럼 보이네요. 완벽한 인체로군요. 아름다워요. 자, 긴장하세요. 나무 같은 당신의 몸이 제 앞에 서 있군요. 당신은 이제 눈을 감아요.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요. 아니요. 자세가 흐트러져서는 안 돼요. 좋아요. 먼저 당신의 속눈썹에 키스하겠어요. 부드러운 눈썹이네요. 다음은 당신의 귓바퀴예요. 작고 예쁜 귀군요. 귓바퀴를 타고 내 혀가 움직여요. 간지러워도 자세는 유지하세요.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져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내려요. 그리고 당신의 입에 키스해요. 아니, 아직 입을 벌리지는 말아요. 내가 세 번 뽀뽀하고 내 혀로 똑똑 당신의 입술에 노크를 하면 그때 입술을 열어주세요. 좋아요. 똑똑. 우리의 혀가 만나요. 얽히고 또 얽혀 다시 풀어낼 수 없을 것처럼 혀들이 트위스트를 시도하네요. 대자 바늘 하나가 마우스 옆에 놓여 있다. 이불을 꿰맬 때 쓰는 10센티 바늘이다. 낮 수업 중 누군가 신기하다며 꺼내 보고는 제자리에 다시 넣지 못해 책상 위에 급하게 올려 두고 간 것이다. 어때요? 흥분되나요? 당신은 차렷만 하고 있으면 돼요. 난 당신의 쇄골을 지나 당신의 작고 검은 젖꼭지를 애무할 거예요. 조금 딱딱하군요. 내 혀가 부드럽게 당신의 젖꼭지를 달래요. 그리고 당신의 등으로 돌아가 당신의 척추 뼈 하나하나를 만져요. 손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뼈 하나하나를 연결하듯 천천히. 그리고 다시 당신 앞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앉았어요. 당신의 배꼽은 아주 깊네요. 그 깊은 우물에 키스해요. 손으로는 뻣뻣하게 선 당신의 물건을 만지고 있어요. 팬티 밖에서 당신의 물건을 입에 물었어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대바늘을 혀로 핥아 본다. 차가운 감촉. 너무 커서 입이 아프네요. 어때요. 좋아요? 벌써요?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바늘에 혀끝을 살짝 찔리고 만다. 오늘은 너무 이른데요? 통화 시간이 10분도 되지 않았어요. 알았어요. 차렷 자세가 당신을 긴장하게 만들어서 그런가 봐요.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잘 자요. 끊을게요.
전화 저편의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에 흥분한다. 그는 그녀의 '핑!'에 2초 만에 '퐁!'하고 답을 해왔다. 그녀는 그날 저녁 신사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명함을 건넸다. 그녀는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아, 옷에 붙어 있던 단추 중 제일 큰 것 하나를 뜯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며칠 후 남자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폰섹스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흔쾌히 응낙했다. 그는 아내와 관계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자신이 불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단추의 목소리가 몹시 흥분을 일으킨다며. 하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며. 가끔 폰섹스를 해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그녀는 폰섹스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단추, 카페'에서 밖을 내다보면 건너편 자리에 늘 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는 지금도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단추를 꺼낸다. 단추를 눈에 대고 작은 구멍으로 그를 본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 그녀는 남자를 향해 조개의 빛을 반사시킨다. 그 빛으로 남자를 태워 죽일 것 같이. 그 남자는 그 상가에서 유일하게 벌이가 괜찮은, 마트의 주인이다. 남자와 그의 아내는 늘 의욕이 없는 몸짓으로 면장갑을 끼고 물건들 위에 앉은 먼지를 털어낸다. 매번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사는 사람들.
'단추, 카페'의 주인은 단추 구멍으로 보기를 좋아한다. 모든 단추에는 구멍이 있다. 단추의 재료가 무엇이든. 무슨 색깔이든. 하나이든 두 개이든 아니면 네 개이든. 그 어떤 단추도 구멍 없이 고정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구멍이 없으면 그것은 단추가 아니다.
그녀는 단추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구멍이 너무 작아서 세상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만큼 흥미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구멍에 자주 비치는 남자는 저편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축 늘어진 어깨를 겨우 지탱하며. 그녀를 마주 바라본다.
가게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다가 단골이 되었다가 사라져 버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우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그녀의 남자들도 바뀌고 머물렀다 다시 바뀌는 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그들과 한 몸이 되었다가 두 몸이 되었다가 세 몸이 되었다가 다시 한 몸이 되었다가를 계속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재활용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그녀의 생 자체가 재활용인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상처받은 눈빛으로 위무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단추, 그녀는 그들을 좀 더 빛나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느꼈다. 상처는 어차피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 흔적이라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마트 주인 남자를 만나기 전 그녀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남자는 슬그머니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마트의 문이 잠기고. 남자의 아내가 집으로 먼저 돌아간 늦은 밤이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한 잔 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소리는 내지 않고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였다. 편의점 유리벽 안쪽을 향해 그녀는 캔을 들어 보이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편의점 주인이 맥주 캔 두 개를 들고 나온다. 편의점 앞의 파라솔 밑에서 남자는 그녀의 가슴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녀는 맥주 캔을 남자에게 건네며 일부러 상체를 앞으로 숙여 그녀의 가슴이 그의 눈에 더 잘 보이도록 한다. 남자는 맥주를 받을 생각도 못 하고 속옷을 입지 않아 둥그렇게 처진 그녀의 붉은 젖꼭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시선과 편의점 주인의 시선이 동시에 머무는.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편의점 주인에게 주자 그가 아쉬운 표정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와 그녀는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깡통이 비워지자, 그녀는 인사도 없이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거리를 두고 그녀를 줄래줄래 따라왔다. 그녀가 집까지 따라온 남자를 무시하고 현관문을 닫으려 하자, 남자의 앙상한 팔이 삽시간에, 애절하게, 문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남자의 여윈 팔을 문 안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어두운 집. 불도 켜지 않고 그녀는 침대로 가 남자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도 모두 벗어 버렸다. 남자를 뉘고 나서 그녀는 침대 협탁 서랍에서 새로 사 둔 골무를 꺼내 손에 끼운다. 쇠로 된 골무는 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반지처럼도 보인다. 그것은 밋밋하지 않다. 바늘귀 크기의 작은 골이 딸기 씨 박히듯 촘촘히 파여 있다. 그녀는 골무를 양쪽 손가락 열 개에 모두 끼우고. 남자를 애무한다. 강하게 남자의 피부를 자극한다. 남자는 조금 놀란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의 손을 자신의 젖가슴에 대어주자 남자는 가슴의 부피와 촉감에 빠져 곧 그녀의 손길에 서서히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녀가 쇠로 무장된 손으로 남자의 성기를 잡고 오럴 섹스를 시작한다. 남자의 두 손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이불을 움켜쥐었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방을 헤맨다. 그녀는 조금씩 더 강도를 높여 남자의 몸 곳곳에 골무의 무늬가 찍히도록 누르고 찍고 긁는다. 피부는 고통을 감지하는 센서다. 그러나 신중하게 피부를 다루면. 설사 바늘이 뚫고 들어온대도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손바닥 바느질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럽지 않은 상처로 남자를 이전과는 다른 즐거운 곳으로 이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버둥거리는 남자의 몸 위로 단추가 올라탄다. 남자가 헉. 소리를 삼킨다. 그녀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검지를 입에 대고 쉿~.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자 남자는 사경을 헤매듯 눈빛을 게게 푼다. 그녀는 남자의 몸을 타고 앉아 템포 조절을 한다. 남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그녀의 이 움직임이 멈추지 않기를. 그리고 어서 멈추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다. 그녀는 남자의 몸을 바늘 삼아 자신의 단추 구멍에 통과시키는 행위를 정성스레 반복한다. 두 몸이 그렇게 하여 고정될 수 있을 것처럼. 남자가 결국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그녀는 일어나 앉은 남자의 어깨를 잡고 속도를 높인다. 몇 초 뒤. 남자의 몸에 있던 모든 기운이 빠지고. 남자는 쓰러져 버렸다. 그녀는 쓰러진 남자의 몸에 마지막으로 콕콕콕. 쇠로 된 골무의 무늬를 찍는다.
그녀의 이름은 단추. 카페의 주인이다. '단추, 카페'에 필요한 것은 단추와 바늘, 실뿐이다. 그녀는 지금 니트 드레스를 수선 중이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이다. 아마도 이 옷의 주인은 자신만의 퀄리티를 보편적인 기성품에서 찾기 싫어하는 부류일 것이다. 어떤 옷이든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사람. 그렇다고 브랜드 가치만을 믿고 살기는 싫은. 자존심이 센 사람일 것이다. 이 드레스에 어울릴 만한 단추를 골라본다. 블랙의 의상에 골드 단추가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있는 이 옷을 어떻게 하면 주인에게 어울릴 새로운 느낌으로 되살릴 수 있을까. 주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강렬한 붉은 색을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단추, 카페'에서 그 옷은 이미 가격과 상관없이 얌전히, 또 다른 상처를 기다리는 물건일 뿐이다. 밋밋하고 단순한 느낌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골드 버튼들을 떼어내고 진주 단추를 프리패턴으로 단다. 이 옷의 주인은 진주가 주는 화려함과 슬픈 의미를 덧쓰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숨긴 여자가 되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할 것이다. 수선을 마무리하기 전. 그녀는 드레스의 옆 지퍼를 뜯어내고 2.5센티 간격으로 여밈 단추를 단다. 그 단추로 인해 옷의 주인은 언제든 더 쉽게 자신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존재를 위장하는 진주보다 이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 숨은 단추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후두둑 빗소리를 내며 열리는 나란한 단추들을.
어린 것들은 작고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답다. 초록의 여린 잎이 줄기에서 돋아날 때마다 '단추, 카페' 주인의 몸에도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더 이상 어떻게도 손댈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런 식의 아름다움에 단추의 손길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아름다움을 혐오했다. 그녀는 가게 한편에 놓인 나무의 줄기를 따라 연두색의 작은 잎들이 새로 돋아날 때마다 그것을 똑똑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실로 단추 열매를 달았다. 채도가 높은 원색의 단추들이 나무에 대롱대롱 열매로 열렸다. '단추, 카페'의 물건들은 그렇게 생명이 없는 것과 있는 것 사이를 오갔다. 산 것이 죽고. 죽은 것이 살아나고. 산 것이 죽었다가 다시 또 살아난다.
따로 모아둔 '단추, 카페'의 삭아 부서지거나 조각난 단추들을 합해 놓으니 15L 철제 양동이 하나가 가득 찬다. 단추가 가득 담긴 양철통에 손을 넣어본다. 차가운 단추의 알알이 손에서 미끄러진다. 단추들을 하나하나 집어내며 그동안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은데 겨우 마흔두 개. 단추의 나이에 멈춰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만난 수강생만도 수백 명은 될 것 같은데. 모두 눈, 코, 입이 사라진 하얀 얼굴들이다. 단추를 골라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본다. 눈이 너무 크거나, 입이 너무 작은 얼굴들. 그러나 '단추, 카페'에서는 그런 얼굴들을 환영한다. 모나고 뒤틀린 것들도 그 나름대로의 자리가 있는 곳이니까.
깊은 밤. 단추가 단추 한 양동이를 들고 동네의 낡은 놀이터를 찾아간다. 신발 속으로 모래가 들어가 맨발의 발바닥이 까끌까끌하다. 충전식 글루건(glue gun)을 점검하고, 어둠을 응시한다. 단추를 한 움큼 주머니에 넣고 먼저 정글짐의 맨 꼭대기로 올라간다. 정글짐의 맨 윗면에 글루를 쏘고 나서 오톨도톨 촉감이 강한 단추들을 붙이기 시작한다. 다음은 미끄럼틀이다. 맨 위의 계단에 부서지지 않는 종류의 단추들을 다닥다닥 붙여 둔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지구의의 중심에도 햇빛에 반짝반짝 빛날 유리 단추들을 잔뜩 붙인다. 마지막으로 그네에는 줄이 매달린 봉에 붙이기로 한다. 그네가 흔들려 내려왔다 올라가기를 몇 번이나 계속해야 했다. 흔들리는 그네를 타고 부들부들 떨며 단추를 붙이려 하면 어느새 글루가 말라 버려, 쏘고 붙이고 쏘고 다시 붙이고 쏘고 또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네 봉을 남은 단추로 덕지덕지 채우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그렇지만 정글짐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간 아이들만 만질 수 있는 단추, 미끄럼틀 계단을 끝까지 올라간 아이들이 밟게 될 단추, 돌고 또 돌아도 중심만큼은 그대로 빛날 단추, 그리고 하늘 끝까지 올라갈 듯 다리를 구르며 그네를 타는 아이의 시선에 부딪힐 단추를 생각하니, 꽤 멋진 단추, 놀이터를 만든 것 같다.
미명. '단추, 카페'의 주인은 놀이터 가장자리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다. 조금 남은 글루를 이용해 모래가 잔뜩 들어간 뾰족구두의 굽에 굴곡 없는 메탈단추를 하나씩 붙인다. 눈을 감고 얼마가 흘렀을까. 2분? 3분? 단추가 단단히 붙자, 빈 양동이를 든 그녀가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세발뜨기의 지그재그 동선이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메탈단추의 경쾌한 소리가 놀이터 주변의 새벽을 울린다.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