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막국수
매콤 대신 고소함 무한 장착
고향막국수
밀가루 없이 100% 메밀로 ‘깔끔'
초가집옛골
막국수와 흑임자·곤드레 환상 조합
봉메찐빵
달콤 팥소에 포슬포슬 식감 오감 자극
시장 먹거리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이색 음료부터
메밀 루틴빵·뻥튀기·유과·오란다·호박엿까지
더 맵게, 더 자극적으로 식탁을 꾸미는 ‘먹방'의 시대, 품위가 살아 있고, 음식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는 평창의 식탁은 그 자체로 귀하다. 올림픽 이후 가시화된 경기 침체는 상인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보다 나은 먹거리, 보다 나은 지역을 만들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군데군데서 빛을 발하고 있다. 봉평에서 메밀음식점을 운영하는 대표들과 지역 주민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 지역 특산품을 가공해 치열한 시장에서 승부하는 상인들 등 새로운 시도가 기대되는 이유다.
# 현대막국수=하얗고 보들보들한 촉감 위로 식감이 살아있는 쪽파가 내렸다. 차곡차곡 찰기 있게 쌓인 전은 끄트머리가 노릇하게 익어 개양귀비 꽃잎처럼 팔락인다. 이곳 현대막국수의 메밀전 이야기다. 부드러운 메밀의 촉감과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총떡은 무의 슴슴한 고소함과 메밀 향이 어우러지고, 막국수는 껍데기 하나 섞이지 않은 메밀의 뽀얀 자태가 아름답다. 타 지역의 막국수와 달리 메밀의 고소함으로 승부하는 점이 특징. 특히 ‘물막국수'는 매콤한 맛에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타 지역의 막국수와는 다른 우아한 맛을 자랑한다. ‘통각' 대신 식감과 향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미식가의 맛이다. 이곳의 또 하나의 비기는 직접 담근 김치다. 생강과 젓갈의 향이 메밀의 슴슴한 듯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눈·코·입이 모두 배부른 한 끼를 만든다.
#고향막국수=‘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작가도 이 국수를 먹고 자라지 않았을까 싶은 고소하고 담백한 메뉴가 있다. 바로 봉평전통메밀국수다. 한 젓가락 들어 올려 입에 넣으면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고 100% 국산 메밀로 만들었다는 하얀 면이 입안에서 후두둑 끊기고 고소한 들기름과 아삭한 갓김치의 향이 퍼진다. 1996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평창 봉평 출신 전수원(60) 사장이 봉평 일대 어르신들이 집에서 해 먹던 전통 방식을 메뉴로 개발한 것. 메밀물국수는 야채와 과일로 육수를 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봉평 일대 고랭지에서 기르고 수확한 강원도 토종갓으로 담근 갓김치도 자꾸만 손이 간다. 여기에 전부 메밀로 만든 묵과 전, 전병에 가게에서 직접 담근 명태회 무침과 곁들인 수육까지 맛볼 수 있는 ‘순메밀 정식'까지 먹고 나면 건강한 음식들로 배를 채운 것 같아 흡족하다.
# 초가집옛골=메밀국수 한 그릇을 질리지 않고 여러가지 맛으로 맛볼 수 있다. ‘흑드레순메밀국수'를 주문하면 메밀국수와 함께 흑임자, 곤드레, 소스가 함께 나온다. 메밀국수에 흑임자를 곱게 갈아 뿌려 먹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고 여기에 한 번 데쳐 양념한 곤드레와 함께 먹으면 폭신폭신한 곤드레와 100% 국산 메밀면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특제소스를 부어 면과 함께 먹으면 술술 넘어간다. 1977년 이순봉 대표의 ‘대성식당'으로 시작해 2000년 가업을 이어받은 딸인 김윤희(56) 대표가 메밀 마니아가 아니어도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메뉴를 개발했다.
# 봉메찐빵=메밀이 껍데기를 벗고 포슬포슬한 빵으로 재탄생했다. 한입 베어 물면 찐빵의 쫀득함 대신 메밀의 포슬포슬한 식감이 느껴지고, 메밀과 어울리도록 적당히 가당한 팥소는 맛에 대한 감각을 깨운다. 평창의 맛을 살려 찐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김형일(58) 대표의 생각에서 시작한 사업은 이제 봉평시장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재탄생했다. 모두 반죽에 메밀을 약 30% 배합해 만든 찐빵이지만, 메밀 맛이 살아있는 ‘메밀찐빵'부터 쑥 향이 솔솔 올라오는 ‘쑥찐빵', 노릇한 자태로 식객을 유혹하는 ‘단호박찐빵'까지 다섯 종류의 맛이 다채롭다.
# 시장 먹거리=세탁소며 엿장수까지 빽빽이 들어선 시장 입구 근처, ‘미대농부'라는 낯선 간판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곳은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을 시작한 ‘미대농부' 임윤미(34)씨의 카페다. 평창에서 직접 농사지어 만든 팥과 더덕, 메밀로 디저트와 음료를 만드는 점이 특징. 꾸밈 없이 투박한 맛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농부의 미래를 궁금하게 만든다. 임씨가 직접 그린 작품도 주목할 만한 볼거리다. ‘뻐꾸기 삼촌빵'집에서는 씹히는 맛이 일품인 메밀로 만든 루틴빵과 메밀 뻥튀기를 쥐어주고, ‘아리곳간'봉평점에서는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오란다와 유과를 건넨다. 제천, 원주, 횡성 등 장을 돌고 있다는 엿장수 어르신이 맛 한 번 보라고 주는 호박엿도 달달하게 시장을 돌아보게 하는 별미다.
평창=이현정·박서화·김현아기자 / 편집=김형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