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 핫플의 어제와 오늘]언덕 위 고풍스러운 미술관 '뉴욕 안의 작은 중세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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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뉴욕 안의 중세유럽, 클로이스터즈(The Cloisters)

뉴욕 맨해튼에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미술관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무 고민 없이 ‘클로이스터즈(The Cloisters)’를 꼽고 싶다. 맨해튼 서북쪽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에 고즈넉이 솟아 있는 이 고풍스런 건물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유적 그 자체다. 그런데 이 건물은 ‘미국에 난데없이 웬 중세유럽 건물이?’라고 물을 만큼 생뚱맞게 유럽의 중세 수도원을 인위적으로 모방한 것이라서 유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렇다고 유적이 완전히 아닌가 하면 또 그건 아닌 것이 이 미술관 건물의 많은 부분이 진짜 유럽 수도원 건물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 짜 맞춘 역사적 실재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클로이스터즈는 아주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중세시대 유적의 파편들을 모은 짜맞추기식 유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유적은 당연히 미국의 것은 아니며, 미국인이 유럽에서 모아 공수해온 유럽의 유적 부분 부분들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중세 프랑스의 유적 파편들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즉 클로이스터즈는 미국도, 뉴욕도 아닌, ‘뉴욕 안의 중세유럽’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매우 독특한 건축물이자 미술관이다.

◇클로이스터즈 외관 (자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클로이스터즈 내부 안뜰 (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

또 한 가지 클로이스터즈가 특이한 건 건물 자체가 중세 수도원 건물의 잔해로 만들어진 점 외에도 그 안에 전시된 작품들 대부분이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회화나 조각, 공예품들이어서 미술관과 미술품이 동시에 중세 유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클로이스터즈는 어느 한 장소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클로이스터즈는 수도원 안에 있는 건축물 한 부분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수도원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안뜰을 둘러싼 여러 건물들’을 의미한다. 미술관 클로이스터즈도 미로같은 출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커다란 안뜰이 여러 개 나오는데 각각의 안뜰을 둘러싼 여러 건물들, 즉 미술관 클로이스터즈 안에 네 개의 클로이스터즈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안뜰 주변 클로이스터즈 안에 있는 작은 홀들엔 중세시대의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안뜰은 별다른 전시 없이 휴게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관람객들이 잠깐씩 앉아 쉬면서 중세 수도원의 숨결을 느끼기 좋게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누구나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있노라면 마치 중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얻게 된다.

◇클로이스터즈_벽화

이 미술관의 유래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미국 조각가 조지 그레이 버나드(George Grey Barnard)는 틈날 때마다 프랑스 전역을 돌며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중세 건축의 잔해들이 시골 구석구석, 산속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 전역을 돌며 모은 엄청난 양의 석조물 잔해들을 모아 두었다가 미국으로 가져오는데, 나중에 이들을 모아 현재의 클로이스터즈 부근에 작은 미술관을 차린다. 그는 죽기 전 이 미술관을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당시 예술품 컬렉터로 유명했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 Jr.)가 이를 매입하여 자신이 소유하던 중세미술품과 부근의 토지(현 클로이스터즈 터)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기부한다. 그래서 지금도 클로이스터즈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한 분관이고, 그 터는 허드슨강과 뉴저지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버나드의 놀라운 수집품들이 현재와 같이 아름다운 클로이스터즈로 재창조된 것은 사실상 당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속 건축가 콜렌즈(Charles Collens)에 힘입은 바 크다. 1938년 그는 버나드의 수집품들을 기초로 4개의 작은 클로이스터즈로 이루어진 중세 수도원 건물을 복원한다. 다만 정확한 복원은 아니고,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으로 재해석한 중세풍의 독특한 건축물로 재창조한 것이다.

◇클로이스터즈 내부에 있는 13세기 프랑스 수도원 출입문 (자료: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클로이스터즈 내부에 있는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의 랑곤 예배당(Langon Chapel) 복원물 (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

클로이스터즈 내부에는 5세기~14세기에 이르는 중세 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하다 보면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사실감이 느껴진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중세 유럽 수도원의 일부를 방금 뜯어 온 것 같은 석조벽화, 조각, 출입구 등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로마네스크 홀(Romanesque Hall)에는 세 개의 석조 출입구가 있는데 12~13세기 각각 다른 프랑스 성당의 잔해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 정도라면 유물이 유출된 국가에서 소송전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뜯어온 흔적이 역력한데, 국가 차원에서의 유물, 예술품 관리가 부실했던 당시에 정당한 경로로 반입된 것이어선지, 컬렉터(록펠러)의 자발적인 기부로 일반에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이상하리만치 이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좌=유니콘 태피스트리 7개 시리즈중 3편(도망치는 유니콘), 왼쪽 문위: 5편(사로잡힌 유니콘) (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
◇우=유니콘 태피스트리 7개 작품중 1펀(유니콘 사냥을 떠남) 중앙: 6편(사냥된 유니콘) (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

1층에는 클로이스터즈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유니콘 태피스트리’(The Hunt of the Unicorn) 연작이 있다. 태피스트리란 중세 유럽에서 성행한 직물 공예로, 염색된 실을 이용해 모양을 짜나가는 형태의 작품인데, 상상 속 동물 유니콘을 사냥하는 장면이 7개의 직물 시리즈로 연속해서 방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정말 유니콘이 살아서 이를 사냥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실적이고 역동감 있는 작품이라 일단 한번 보면 그 충격이 오래 남는다. 참고로 중세시대에 유니콘은 순수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이 태피스트리 연작은 1500년경 브뤼셀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연작을 만든 사람이나 최초 소유자 등이 파악되지 않아 작품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 후 이 작품은 18세기 초까지 어느 프랑스 귀족가문(La Rochefoucauld family)의 대저택(chateau)에 침실 커튼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다 프랑스대혁명으로 그 대저택이 수탈당하면서 이 가격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희귀 중세유물은 어느 시골농가의 헛간에서 채소를 덮는 천으로 마구잡이로 사용되게 된다. 훗날 가문의 조상들이 이 ‘희한한 오래된 커튼’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던 귀족가문의 후손이 하인 집 헛간에서 천 조각으로 사용되던 이 커튼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제대로 복원하여 대저택에 다시 걸어두었다고 하는데, 이를 본 록펠러가 1923년에 이 직물시리즈를 당시로는 아주 비싼 값에 매입한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1937년 록펠러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이 희대의 작품을 기부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이 클로이스터즈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클로이스터즈_푸른 안뜰

이 밖에도 15세기 화가 캄팡(Robert Campin)의 수태고지(가브리엘 천사가 성모께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성화)를 주제로 한 제단 위 그림(triptych alterpiece)도 유명하며, 프랑스 수도원에서 뜯어 온 흔적이 역력한 여러 석조 벽화, 중세 목제 예수상, 목제 성모 마리아상 등 마치 중세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 듯한 작품들이 각 홀마다 사실감 있게 전시되어 있다. 직접 감상해보면 알겠지만 클로이스터즈의 작품들은 여느 다른 뮤지엄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그건 작품들이 아주 오래된 유적인 탓도 있지만 중세 수도원을 복원한 미술관(클로이스터즈)안 여기저기에 마치 수도원의 일부로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서 그냥 수도원 내부를 돌면서 구경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장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클로이스터즈 안 4개의 작은 클로이스터즈 안뜰은 12~15세기 지어진 프랑스 수도원을 모방한 형태로서 제각기 다른 건축양식을 따른다. 지금도 뜰안에는 중세 수도원에 실제로 서식하였던 허브 작물, 꽃, 나무들을 그대로 키우고 있다. 은은한 허브향에 취한 듯 작품을 감상하다 잠시 쉬어가는 안뜰에서 느끼는 편안한 안도감은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뉴욕 그 어느 곳에서의 기억보다도 훨씬 더 오래도록 신비한 잔향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번 12회를 끝으로 '메트로폴리탄 뉴욕 핫플의 어제와 오늘' 지면 이야기를 모두 마칩니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은 앞으로 정기적으로 강원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남은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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