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지난 연말 어느 송년 회식 자리에서 ‘돈나 푸가타(Donna Fugata)’라는 라벨의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재배되는 ‘네로 다볼라’라는 포도를 주품종으로 만든 와인인 만큼 와인에서 풍기는 진한 포도향이 일품이다. 맛도 맛이지만, 자리에서 들은 와인 명칭의 유래도 흥미로웠다. 이탈리아어로 ‘돈나 푸가타’는 ‘도망친 여인’이라고 한다.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피해 나폴리에서 시칠리아섬으로 도망한 사건을 상징화하여 ‘돈나 푸가타’라는 와인농장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술을 걸치는 와중에 ‘도망’이라는 말이 들리자 필자는 불현듯 잠적한 피고인들이 떠올랐다.
말 못 할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에서 약속된 재판 날 법정에 나타나지 않고 잠적을 하는 사례는 형사재판의 고질적인 애로사항이다.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형사법정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단연 피고인이다. 형사재판의 실제 주인공은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아닌 피고인이다. 물론, 형사법정은 주인공인 피고인이 바라고 즐거워할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검사의 정식 기소로 주인공이 된 이상 주인공이 법정에 출연하지 않으면 법정이라는 무대는 원칙적으로 열릴 수 없다(예외적으로 피고인 없이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원칙적으로 그 무대에 서야할 의무가 있다. 형사소송법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주인공이 없이 무대를 어찌 열 수 있겠는가? 연극은 주연 배우가 출연하지 못하면, 더블 캐스팅 배우라도 출연하여 공연이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그 누구도 주인공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불구속 상태의 피고인이 스스로 법정에 나타나지 않으면, 판사와 검사, 변호사, 피해자는 주인공이 나타날 때까지 주인공을 수소문하는 ‘지명수배’와 함께 하염없이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기어코 법정에 나타나지 않으면, 판사는 부득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유무죄를 떠나 잠적한 주인공을 찾는 동안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노와 답답한 심정으로 얼룩진 피해자들에게 재판부를 비롯한 재판 관계자들은 한없이 송구스러운 감정이 솟구친다. 정의의 실현과 신속한 재판이라는 이념은 넘어가는 달력의 페이지 수에 곱절 이상으로 퇴색된다.
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기사에 따르면, 잠적한 피고인들에 대하여 전국적 규모로 집중 검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검거활동 결과 상당수의 피고인들이 붙잡혀 구치소에 갇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법정이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에 붙잡고 붙잡히는 일이라는 것이 잡으러 가는 쪽과 잡혀오는 쪽 양자 모두에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잡혀오는 쪽은 잡히기 전까지 어디서 무얼 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서야 할 무대를 생각하면 속이 얹힌 듯 불편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피고인과 같은 주인공에게 정당하고 효율적인 방어권의 보장을 위해 적법절차와 무죄추정이라는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그 가치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불구속 재판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가치와 원칙은 재판이 원활히 진행되고, 출석을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법정이 불구속 상태로 초대한 주인공에게, 주인공이 무대를 피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무대에 나타나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득불 강제수단이 동원되기 전에 하루빨리 스스로 무대에 서서 자신의 공과를 논박하고, 명징하는 것만큼 피고인 자신과 다른 모두에게 바람직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