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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피플]지역소멸 만드는 '백래시 정치'…"성평등 민주주의로 대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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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간 '백래시 정치' 출간
여성 청년, 지역서 정주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취업과 노동. 지방을 떠나는 수많은 청년의 공통된 이유다. 수도권이 독식한 산업 구조, 한국사회의 열악한 노동인권은 지방 청년들의 삶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지웠다. 여성 청년이라면 넘어야 할 벽이 더 있다. 이곳은 여성과 남성의 노동환경 격차를 나타내는 '유리천장지수' 가 11년째 OECD '꼴찌'인 한국. 지방의 여성청년이 정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을 난이도는 남성들의 서너 배, 혹은 그 이상이다. 거기에 여전히 여성의 몸에 의지하는 출산과 육아, 돌봄노동은 지역의 청년여성이 '딸,' '아내,' '엄마' 말고도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없앤다. 그래서 성차별은 '지방 소멸'의 시작이고, 안티페미니즘은 '지방 착취'의 구조를 유지하는 기획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찌감치 이런 '노동과 젠더'의 관계에 주목한 사회학자다. 1998년 박사학위논문 '한국 여성의 모성 갈등과 재구성에 관한 연구: 30대 주부를 중심으로' 를 펴낸 뒤 한국여성학회장, 한국사회정책학회장 등을 지냈고, 2019년에는 서울시 성평등임금격차개선위원장을 맡아 국내 최초로 성평등임금공시제를 도입했다. 그런 신 교수가 최근 화제의 신간 '백래시 정치'를 펴내면서 "과연 안티페미니즘은 어떻게 권력이 됐나?" 라는 화두를 던졌다. 최근 신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는 하나의 답을 더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안티페미니즘은 어떻게 지역을 쇠락시키고,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신경아 교수의 신간 '백래시 정치' 사진제공=도서출판 동녘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 젠더평등에 대한 반동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요즘이다. 현재 상황 어떻게 진단하나.

"폭풍우가 커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와 대우가 있어야 한다는 평등주의에 대한 반대, 이른바 '백래시' 가 정치적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의 백래시가 트럼프 집권 이후 명백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났다면,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론, '이대남(이십대 남성)'에 대한 동정론이 제기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꺾어버리는 정치적 현상으로 등장했다고 본다."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전략적인 움직임이 권력이 됐다는 증거인가.

"그렇다. 이 백래시는 처음에는 문화적 영역에서, 주로 여성에 대한 인터넷 상의 공격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여성단체에 대한 공권력의 조사, 대학에서의 여성학 강의 축소 등으로 조직화되는 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평등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여성과 젠더와 성평등이 세상에 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철학자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인간이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가 됨으로써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현상은 여성을 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세상에서 지우는 움직임이다. 이 책을 빨리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이 16일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논의할 때 지방과 여성이라는 교차성의 심급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 그러나 지역과 여성에 대해 말할 때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봐야 한다. '지방 여성' 은 무능하게 앉아서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지역이라는 새로운 실험공간에서 싸우며 자신과 사회를 바꿔나가는 주체들이다."

■지역은 어떤 실험을 하는 공간인가.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에 예테보리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1일 6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실험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는 돌봄노동을 줄이고, 젠더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예테보리 기업과 노동자들도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육아하는 남성을 하나의 보편적인 모델로 자리잡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역 안에서의 성평등 실험이 사회 전체적인 젠더불평등을 완화하고, 돌봄노동을 분배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모든 정책은 지역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한국에서는 지역을 떠나는 여성들의 주된 이유로 '보수화된 지역 문화'가 언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지역이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역 기업이 남성 중심적 문화를 유지할 때 여성은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직급에 여성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적은 것, '여자는 이래야 한다' 는 성역할 안에 여성노동자를 가두는 것이 모두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의 증거다. 행정과 공공 측면에서도 강원도자치경찰위원회 초대 위원 중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인 판에 말이 안 된다. 또, 강원도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도의회 의원 중 여성 비율이 얼마나 되나(기자주:강원도의회 의원 49명 중 여성은 8명에 불과하다). 여성 대표가 30%도 안 되는 환경은 여성 이슈를 제기하는 의원들이 눈치를 보거나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를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남성동성사회성을 강화시키는 환경' 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지역의 여성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애쓰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지역이 변화하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강원도는 지역에 필요한 성평등정책을 전혀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와 행정구조의 문제이기도 한데, 한국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예산과 권한을 가지고 좋은 정책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성평등 정책이 지역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고 거대하지만 이 정책은 80% 이상 중앙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지역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보다도 육아와 보육 예산에 편중돼 있어 지역에 필요한 성평등정책을 펼쳐나가기가 어렵다. 모두 지역과 주민에 대한 권한강화(Empowering)을 게을리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실험장으로서의 지역을 기대할 수 있나.

"실제 강연을 해 보면 지역 사람들은 매우 의식이 높고,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할 준비가 돼 있다. 특히 중노년 남성들이 앞자리에 모여 고개를 끄덕이며 성평등 강의를 듣는 광경은 수도권보다 지역에서 더 잘 볼 수 있었다. 지역은 소통단위의 규모가 작고,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또,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주민들이 직접 나서 지역의 일에 참여해본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이 있다. 이와 같은 주민들의 역량을 모으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 제도가 부족할 뿐이다."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은 주민의 뜻을 모아 지역의 성평등 연구·활동을 진행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사진=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로만 지방소멸이 위기라고 하지 말고 여성이 실제 지역에 거주하며 출산과 육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 정주여건이 무너지면 지역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수도권과의 격차가 늘고 있는데, 불평등은 인구가 줄어드는 주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오히려 백래시가 가시화되며 지역에서 성평등 의제를 연구하는 기관들에서조차 '여성'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강원도가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제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을 비롯한 각 지역 싱크탱크와 행정기관에서 지역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연구하고 실천할 때다. 그리하여 지역은 여성과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과 연대해 지역사회를 더 낫게 만들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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