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애국가와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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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반주에 맞춰 4절까지 부르겠습니다”

지난달 29일 춘천 베어스호텔 컨벤션홀. 경술국치 113주년 추념식 행사에 참석한 일부 학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해 본 경험이 손에 꼽거나 아예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4절까지 부르라는 거 실화냐?”, “가사 까먹었는데…라고 할 뻔”이라며 10대 특유의 유행어를 섞어 키득거리는 학생들에게 깊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가끔씩 철없는 언행을 보일 수 있는 시기라며 그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기에는 ‘애국가’의 엄중함이 발목을 잡았다. 광복회 강원특별자치도지부가 땀 흘려 준비한 경술국치 추념식은 무사히 성료됐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 한 켠에는 애국가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던 학생들의 태도가 아쉬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기자의 초등학생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운동장이나 대강당에서 아침조회가 열렸다. 선생님들은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지 못했거나 큰 소리로 부르지 않는 학생들을 조회가 끝난 뒤 따로 불러내 다시 완창하게끔 지도했다. 당시에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벌이 지금보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기라서 훈육 방법이 엄했던 선생님들은 몽둥이로 손바닥을 내리치며까지 혼을 내기도 했다. 애국가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를 길러내며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길러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애국가는 곧 애국심이었다.

언젠가부터 애국가가 ‘국가’로서의 예우을 받지 못하고 있다. 4절까지 완창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애국가를 ‘시간 관계상’이라는 핑계를 대며 1절까지만 제창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행사에 초대된 내외빈들을 소개하는 시간은 5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잦다. 그뿐이랴. 축사, 격려사, 대회사는 1인당 10분을 넘길 때도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애국가보다 행사의 격식을 위한 겉치레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어른들이 요즘들어 뜨거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주제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놓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에 대한 철거 여부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철거의 핵심 이유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야당 정치인을 비롯한 일부 고위직 인사들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판단”이라며 연신 거센 비판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국립대전현충원 앞 도로를 기존의 ‘홍범도장군로(路)’보다 ‘현충원로(路)’가 적합하다며 도로명을 둘러싼 새로운 진영논리까지 탄생했다.

‘이 기상과 이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애국가 4절의 첫 마디. 진영논리를 떠나 홍범도 장군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감히 흉내 내기 조차 어려운 애국심으로 무장해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나라를 위하겠다는 애국가의 참뜻을 몸으로 실천했다.

그런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예우조차도 적절히 판단하고 타협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미래 세대의 피로감은 짙어진다. 우리의 풍요와 안녕을 지켜낸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언성을 높이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국치가 따로 없다. 그런 어른들이 애국가 제창 시간에 키득댔던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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