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e초점] 국가가 무릎 꿇을 때 국민은 일어선다

하광윤 강원민주재단 상임이사

지난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실화해위원회와 언론사, 납북귀환어부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 추진위가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피해보상 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을 위한 민관정(民官政)토론회를 개최했다.

납북귀환어부 발생 배경과 실태, 그들이 겪은 아픔과 남은 상처, 치유 방안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50여년간 정권의 은폐와 방기 속에 반복되고 또 묻혀 있던 인권 침해 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앞장서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또 여야 국회의원이 참가해 특별법 추진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50년간 묵은 문제 해결의 희망을 보았다. 그들의 충정과 약속은 믿는다. 하지만 극한의 대립상태에 있는 정치권이 얼마나 빨리 또 충실히 입법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지난 3년간 납북귀환어부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을 위한 피해 당사자와 시민영역, 언론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느낀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납북귀환 인원 3,300여명, 형사처벌자 1,5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다. 그럼에도 50여년간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는 이 사건이 장시간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자의 권리가 존중받을 때 모두의 권리가 존중받는다.

둘째,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는 데는 ‘어촌공동체의 존속’과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역 활동가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개발로 인해 어촌공동체가 사라진 서해안과는 달리 동해안에는 아직 어촌공동체가 존속하고 있고 20년간 이 문제를 제기해 온 지역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셋째, 전국적 공론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피해자들의 자각과 단결,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멈추지 않은 지역 활동가들의 노력, 지역 언론의 전국적 이슈화, 기초·광역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등 피해복구 노력,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적극적 개입 등이 있었다. 말 그대로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민·관·정이 합심한 모범적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넷째, 모든 사회적 갈등은 발생, 심화, 확산의 과정을 거친다. 국가나 지방정부 등의 모든 정책은 민간 내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분단 현실에서 이념의 지형과 관련된 문제들은 민간 내 갈등이 더욱 첨예하다. 피해자가 가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이기도 한 갈등의 중첩이 일어나 그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피해·가해 문제가 명확하다.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왜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섯째, 이 사건의 당사자는 국가권력과 피해자만이 아니다. 2차, 3차 피해와 직간접적으로 많은 국민이 연관되어 있다. 피해자와 가족도 상처 받았지만 공동체도 피폐해졌다. 국민 모두에 대한 국가의 사과메시지가 필요한 이유다. 납북귀환어부 인권 침해사건에 대해 국가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피해 당사자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지역공동체의 상처도 치유될 것이고 국민 모두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다. 국가가 무릎을 꿇을 때 국민의 자존감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높아진다. 솔직하고 겸손하게 또 용기 내어 사과하는 국가는 국민의 애정과 권위를 되찾을 것이다.그런 국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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