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잃은 채 길거리를 배회하다 길을 잃고, 교통사고나 실족사고 등으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게 치매 환자들이다. 정진규 시인은 ‘눈물’이라는 시에서 치매를 ‘거기엔 어떤 빈틈도 행간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 있더라’고 했다. ▼치매는 노인에게 가장 두려운 병(病)이다. 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과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주기까지 한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치매는 불가항력적 삶의 소재로 드라마에서 자주 인용된다. 몇 년 전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도 젊은 치매에 걸린 주인공의 캐릭터는 강렬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수애)이 긴 머리에 헤어롤을 감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애인을 만나러 가던 장면은 아직도 애잔하다. ▼2017년 12월 종영한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난소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인희(원미경)가 이불로 시어머니(김영옥)의 얼굴을 덮고 누른다.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고 한다. 자신이 죽고 난 뒤 고생길이 훤한 시어머니가 걱정돼 이성을 잃은 것이다. “나 먼저 가 있을게. 어머니 정신 드실 때 나 따라와요. 아범하고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라며 눈물을 쏟는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 철렁하지 않는 현대인은 드물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깜빡깜빡할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다. 왜 컴퓨터를 켰는지 생각나지 않아 멍하게 앉아 있는 일쯤은 애교 수준. 이런 현상이 단순 건망증인지, 치매 초기인지를 고민하는 ‘건강염려증’도 유난히 많다. ▼치매 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9월 현재 100만3,100여명에 이른다. 급속한 고령화 흐름 속에 환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치매 공습’, 100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