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대피를 통보했다. 대상은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1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수차례 공습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만 하더라도 수만명에 달한다. 이들 피난민을 지켜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피난민의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70년 전 전쟁을 치렀던 우리에게 ‘피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타까움은 아직 남아 있다. 6·25전쟁 당시 남북한 주민들은 크게 두 차례의 피난을 경험했다. 우선은 전쟁 발발 직후다. 당시 1차 피난민의 수는 1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남한 사람들로 인천상륙작전에 따른 서울 수복으로 대부분 고향으로 귀향했다. 2차 피난민은 1950년 10월25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발생했다. 이때는 북한의 민간인도 상당수 월남했고 서울과 경기 일부 주민도 대규모로 피난 행렬에 참여했다. 2차 피난민은 480만여명에 이른다. ▼이 중 고향인 북한을 떠나 남한에 대거 정착한 피난민들의 생활은 고난으로 가득 찼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56만명의 피난민이 경상남도에 들어왔고, 이 중 26만명이 부산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타향살이로 힘든 피난민들의 고난을 기록한 영화가 바로 ‘국제시장’이다.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피난민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이 영화는 ‘피난민’과 ‘이산가족’, ‘산업화’ 등을 모두 담아 1,426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전쟁이 끝난 뒤 60여년이 지난 2014년 개봉했음에도 ‘피난’과 ‘이산’에 대한 아픔이 우리에게 남아 있음을 알려준 영화였다. ▼전쟁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민간의 불안은 커진다. 외신을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피난 행렬을 볼 때마다 과거 6·25전쟁이 떠오른다. 종교와 이념 등 복잡한 중동에서 각국의 갈등으로 빚어진 이번 전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민간인 피해다. 이역만리 먼 곳의 주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