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사에서 골계미의 대가로 불리고 있는 김유정(1908~1937) 선생의 마지막 작품 ‘땡볕’이 연극 ‘땡볕:길을 잃다’로 각색돼 오는 12일까지 매주 금·토·일 아트팩토리:봄 무대에서 관객과 조우한다.
소설 ‘땡볕’은 1937년 2월, 김유정 선생이 작고하기 불과 한달 전 여성(女性) 11호를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릴없이 아내의 삶을 포기하는 선택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남편, 그리고 무섭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의 아내 이야기가 처연하게 담겨 있다. 김유정 특유의 문체와 함께 헛웃음을 짓게하는 너무도 해맑은, 선량한 무지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를 기본 서사로 한 간결한 구성이 오히려 슬픔을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사)문화프로덕션도모의 ‘김유정 상설공연 프로젝트’의 5번째 작품인 이번 연극은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덕순과 아내,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부부 민준과 서연을 서로 교차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서로 다른 시대에서 그들이 겪는 이야기들을 본래의 시간과 거꾸로 흐르는 시간으로 나눠 연극 안에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대를 넘어 여전히 반복되고, 여지없이 직면하게 된다는 쓰라린 현실을 보여준다. 4명의 배우가 80분간 이야기를 힘있게 이끄는 이 연극은 콘트라베이스와 피아노의 라이브 연주가 배우들의 호흡과 어우러지면서 집중을 돕는다.
특히 함께 등장하는 사람 모습의 오브제는 이 연극의 큰 매개첼로, 관객들을 극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공연을 맛보다’를 테마로 공연을 전후해 공연과 연관된 음식을 선보이는 극장식당에서는 관객들에게 컵라면과 소주 한잔을 제공한다.

김관(뾰족한 상상뿔 대표) 연출은 연출의도와 관련해 “삶과 죽음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이 소설이 현대에도 반복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재조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쩌면 김유정 작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유정 소설을 연극으로 재탄생시키는 ‘김유정 상설공연 프로젝트’는 2022년부터 김유정문학촌이 자리한 춘천 실레마을의 소극장 아트팩토리: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2024년에도 새로운 작품 2편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