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 인공지능과 판사

박현기 춘천지방법원 판사 

“차라리 인공지능이 판결하는 것이 낫겠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판결이 선고될 때마다 뉴스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응입니다. 주로 형사사건에서 양형 판단이 내가 생각하는 범죄의 불법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이런 반응이 나오고는 합니다. 인공지능이 판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제시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판사들은 사회 경험도 갖추지 않은 채로 책상머리에서 법전만 가지고 판단하다’라고 비판하고, 다른 이들은 ‘범죄 피해를 당해보지 않아서 지나치게 관대하다’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전관예우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이러한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일까요.

인공지능 기술은 눈이 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승리한 이래 2022년 3월에는 챗GPT가 출시되기에 이르렀고,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챗GPT의 쓰임에 관하여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 속도를 고려하더라도, 현 시점 혹은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하여 앞서 든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소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기존에 인간이 창조해낸 문서를 학습한 초거대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하더라도 그 학습의 기초가 되는 것은 기존에 선고된 판결일 수밖에 없고, 기존 판결의 문제점 역시 그대로 답습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한 양형도 여전히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에는 선례에 따라 결론만 정확하게 내리면 되는 사건도 많이 있지만, 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진보적인 판결로 사회변화를 선도하는 사례도 분명히 있습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에게 이러한 역할까지 요구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불투명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대부분 그 세부 작동원리가 불투명합니다. 학습한 데이터 자체를 해독하기 난해한 형태로 인공신경망(Neural Network)의 구조에 반영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특정 결과값을 도출했을 때 해당 인공지능을 설계한 개발진마저도 구체적인 사안에서의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법관의 판단은 논리적이어야 하고, 판결은 그 논증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내기 어려운 현재의 인공지능으로는 판사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절차에서 인공지능의 쓰임새에 관한 현재의 논의는 판사를 ‘대체’하는 것보다는 ‘보완·보조’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의 업무는 크게 ① 기록 검토를 통한 사건의 파악, ② 관련 법리 및 유사 사례의 검색, ③ 판단, ④ 판결문 작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가운데 법관의 고유영역인 ‘③ 판단’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법관의 업무부담을 경감하여 그 역량을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판사의 업무를 온전히 대체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그러나 필자 역시 1인의 판사로서, 인공지능이 판결을 했으면 좋겠다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매우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법리에 따라 양심껏 해왔던 판결들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여 왔는지, 법관의 판단과 그 이유가 왜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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