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이율배반, 고교학점제와 통합수능

이영욱 강원자치도의원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수능 성적표는 12월8일 제공될 예정이다. 형설지공으로 공부한 강원자치도 수험생 모두 원하는 성적 이상의 성적표를 받게 되길 소망한다.

교육부에서는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2028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는 변화를 예고했다. 사회탐구, 과학탐구 교과를 통합과목으로 치르고 학교 내신성적도 현행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은 고교학점제가 적용 중이며 2025년부터 전면적으로 모든 학년에 고교학점제가 적용돼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교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통합교과 수능과 고교학점제는 모두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말 그대로 ‘이율배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도록 고교학점제를 만들어 놓고 수능을 통합과목으로 치르게 하겠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엇박자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반계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사회탐구 과목은 사회문화, 정치와 법, 경제, 한국지리, 세계지리,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등 아홉 개 과목이며 과학탐구 과목은 생명과학Ⅰ과 Ⅱ, 화학Ⅰ과 Ⅱ, 물리학Ⅰ과 Ⅱ, 지구과학Ⅰ과 Ⅱ 등 여덟 개 과목이다. 학교에서 희망하는 과목만을 선택해 공부하고 수능은 영역별 전 과목을 통합으로 치르게 되면 공부하지 않은 과목의 내용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대학입학의 수시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제시하는 대학이 많다. 세부 과목별 수능에서는 학생이 자신 있는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므로 기준등급을 맞추기가 용이하지만 통합교과 수능에서는 모든 과목의 내용을 공부해야 하며 과목 수가 축소돼 기준등급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학교 내신성적 산출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게 되면 대학입학전형에서 학교 내신성적의 변별력이 약화돼 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수학능력시험의 성적은 등급으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백분위 점수가 함께 제공돼 성적에 대한 변별력이 매우 높다.

대학입시에 학교 내신성적을 반영하게 된 배경에는 입시 중심으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정상화시키는 일과 함께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학생들을 배려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본격화되면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의 무력화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학부모들은 수능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교육 시장이 잘 갖춰진 도회지를 찾을 수밖에 없고 지역 교육은 큰 위기를 맞을 게 뻔하다. 지역소멸 현상이 가속화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학전형 방법에 영향을 받는다. 대학입시제도가 재채기를 하면 초·중·고등학교에는 바람이 분다. 지역 교육을 살리는 대학입시 정책이 지역 소멸을 막고 국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지름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 개발로 국가적 역량을 모으고 있는 때에 교육부에서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로서 즉시 재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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