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해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니 다사다난이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에서 더하고 뺄 것이 없을 듯하다. ‘투 다이나믹(too dynamic) 코리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로 출렁였고, 그 와중에 균형감을 얻었는지 둔감해진 것인지 이러구러 멀미증을 견디며 또 한 해를 떠나보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이즈음 ‘K-컬처’ 열풍으로 세계 속의 위상이 정점에 다다라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반만년 역사에서 고대 국제 도시 서라벌을 수도로 했던 통일신라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변방의 약소국으로 식민과 분단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나라가 이토록 단기간에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 문화 속에 새 빛으로 떠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중예술을 넘어서 음식과 전통문화까지 무엇이든 ‘K’의 이름으로 환영받는다. 얼마 전에는 서울지하철에서 피부색이 서로 다른 연인이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모국어가 다른 연인의 소통 수단이라니, 언어가 곧 문화적 위상이라고 보면 우리는 명목만의 선진국이 아닌 내용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토록 찬란한 클라이맥스에서 우리는 가장 깊고 가파른 어둠에 직면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흑사병’에 비유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1급 전염병처럼 빠르고 치명적으로 미래를 무너뜨리고 있다. 저출산은 초고령화와 맞물려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을 비롯한 국방, 교육, 의료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돌이킬 수 없고 백약이 소용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새해에도 대단한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높은 순간에 다다라 스스로를 지워 없앤다! 세계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한국의 기이한 자멸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광과 위기가 공존하는 이때에 우리는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새로워졌다. 무엇보다 그 탄생에서 민관이 함께하고 여야가 합심하는 아름다운 과정이 있었음에 큰 의미가 있다. 이제는 이름으로 만족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실질적이고 실제적인 정책과 사업으로 특별해질 필요가 절실하다.
강원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나는 지난해 몇 가지 사업에 도전했다. 일본의 작가와 언론인 등을 초청해 강원의 문학과 교류한 ‘K-BOOK 아트투어’, 제1회 강원장애예술인 아카데미, 강원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예술이랑’ 등이 그것이다. 강원예술이 지역의 장벽을 뛰어넘는 발판을 만들고, 문화예술교육으로 소외 지역·계층을 포용하고자 기획한 사업이었다. 그를 통해 세계 속의 강원예술이 가진 가능성과 장애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확인했다. 또 정선군 임계 지역의 지역아동센터에 악기 교육을 진행한 ‘예술이랑’은 15명의 대상 아동 가운데 10명이 결혼이민·탈북 등을 통한 이주민가정이라는, 수도권과 도시 지역에서 알지 못하는 다문화사회로의 변모를 확인하며 충격과 동시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흑사병’이라는 초유의 재앙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묘파한 까뮈의 소설 ‘페스트(La Peste)’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확실한 것은 매일의 노동 속에 있었고 그 외의 것은 실낱들, 무의미한 몸짓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선거 등을 통한 더 큰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부디 모든 후보자가 개인의 영예와 도당의 이해를 넘어 ‘우리’의 미래를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일상을 사는 보통의 우리가 매일의 희망을 일굴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