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할 말은 그대로 하는 권 의원의 대화법이 자기주장이 강한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 의원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서설도 길지 않고 곧바로 주제로 들어가는 대화를 선호한다. 가부(可否)에 대한 본인의 의사 또한 명확하다. 그래서 빙빙 돌려가며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 솔직하게 터놓고 결론을 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권 의원의 이런 스타일을 모르고 처음 그와 마주 앉았던 사람 중에는 만남 후 불쾌감을 토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대선 승리 직후부터 대통령과 하루에도 몇 차례씩 통화하고 만나는 과정에서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지키면서도 국정 운영에 대해 조언할 때는 쓴소리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윤 대통령과 권 의원간의 전화를 내가 본의 아니게 엿들은(?) 적이 있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권 의원과의 인터뷰를 하던 도중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권 의원은 의원실에 있던 3명의 강원일보 기자들을 내보내기가 어려웠던지 창가로 가서 손을 가리고 통화를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윤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 권 의원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당시 권 의원은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깎듯이 쓰면서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는 식으로 본인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래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역시 윤핵관’ 이라고 소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취임 1년여 후부터 윤 대통령이 권 의원을 찾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정치권에서는 보스 기질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윤 대통령의 성격상, 국정 운영의 문제점을 그대로 전달하는 권 의원의 직언(直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오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또 다른 측근 그룹이 갈등을 부채질했다.
2023년 1월, 권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타의(他意)에 의해 포기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권 의원이 공천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설들이 나돌았다. 이른바 친윤 핵심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가 공론화되던 시기에 권성동 이름이 오르내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지난 2월 초 국민의힘 공천신청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쟁자가 없을 것 같았던 강릉에 갑자기 김한근 전 강릉시장과 오세인 전 광주고검장이 출마한 것을 두고도 여러 추측이 오갔다. 이들이 권력 핵심부의 권유를 받고 공천신청을 해 권 의원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권성동의 단수공천이었다. 김한근·오세인의 컷오프를 두고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 여러 말들이 있지만, 용산과 여의도 일각에서는 2월 중순부터 권성동은 무난히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대통령실에서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국민의힘이 공천심사를 시작한 2월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의힘이 최대 150석 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던 때였다. 이대로라면 총선 승리의 공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쥐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러자 한편에서는 총선 후 대통령의 레임덕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동훈을 견제하면서 균형을 맞출 인물이 필요했다. 또 만약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에도 복잡해질 당내 상황을 질서있게 수습할 사람 역시 있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의 적임자가 ‘권성동’이었다.
까칠하지만 뒤끝 없고, 다른 의도를 갖지 않는 담백한 성격에 정치적으로도 5선의 무게감과 상대가 누구든 할 말은 다 하는 특유의 스타일은 총선 이후 당과 대통령실의 혼란을 정리할 해결사로 꼽혔다. 권 의원이 총선 도중 일부 후보들의 윤 대통령의 탈당 요구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선거 직전 국회 소통관에서 “당을 살려달라”고 읍소한 것도 총선 이후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됐다.
최근 그가 당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일부에서는 총선 패배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있음에도 그의 핵심 측근을 당 대표로 세우는 것은 민심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많지만, 반대로 임기 3년 남은 대통령과 무작정 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대통령에게 쓴소리로 직언할 수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있는 권 의원을 내세워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변화시키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권 의원이 앞으로 어떤 행보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윤 대통령과 멀어지면서 한동안 정치적 야인(野人)으로 만들었던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이번에는 단수공천을 받아 5선 국회의원으로 돌아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점이다. 정치란 참 알다가도 모를 생물이란 점을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