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청호동갯배’ 근현대사의 아픔과 역사 간직한 소중한 유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장세호 전 속초시 행정동우회장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故) 이성선 시인의 시 ‘속초’의 일부다. 속초항 하늘은 맑고 갯배 선착장에는 행락 인파와 갈매기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봄맞이에 들떴다.

언제까지나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개발정책으로 갯배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다. 속초시 청호동 870번지, 청호동 끝은 ‘아바이마을’이다.

왕복 400원의 갯배 체험은 짧은 거리지만 숨겨진 의미는 크다. 당시 부월리 2구(청호동)와 속진(중앙동)이 맞닿아 있던 것을 외항과 내항(청초호)이 통수되고 폭 92m의 수로가 생겼다.

속초읍에서 갯배 1척을 만들어 이용했는데 당시의 갯배의 크기는 트럭 한 대와 우마차 1~2대를 같이 실을 만한 크기였다. 6·25동란으로 패선되었다가 수복이 되면서 거룻배(종선)를 사용하게 됐다.

당시 조막손 영감(김영학)이 갯배를 운영했는데 자기 소유의 거룻배를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피난촌 청호동 주민들의 불편은 많았다.

1955년 초 속초읍에서 지금 모양의 갯배 1척을 만들어 5구(구장:김무림)에 관리를 맡겼다.

1961년 1척을 더 만들어 정식 도선업 허가를 받은 재향군인회 속초지회(지회장:마장건)가 운영했다. 갯배가 있어도 청호동 사람들의 생활은 제약됐다.

수해가 나거나 해일이 일어 청초호 물이 불면 갯배의 운항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을 오가며 생선장사를 하는 아낙의 발이 묶이고 아이들의 등하교도 멀리 조양동을 돌아가야 했다. 필자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을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다.

1988년 갯배는 청호동개발위원회에 운영권이 넘어갔고 1998년 낡은 목선을 버리고 4,000만원을 들여 현재의 35인승 FRP선으로 바뀌었다.

갯배와 갯배나루는 TV 드라마 ‘가을동화’와 TV오락프로그램 ‘1박 2일’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갯배나루는 건어물가게와 횟집, 생선구이집, 오징어순대집 등이 들어서며 관광 번화가로 도약했다.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아바이마을에 아프게 스며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이젠 구수로 교량(금강대교)과 신수로 교량(설악대교)이 연결돼 갯배를 이용하지 않아도 시내와 교통할 수 있다.

청호동과 갯배 그리고 갯배나루는 잃어버린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목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그곳을 실향 1번지라 부른다. 지난 1일부터 갯배 운영권이 속초시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갔다. 체험 및 즐길 거리가 풍성하고 아바이마을의 소득과 즉결되는 사업들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파리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