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광부엄마]한달에 이틀 쉬고, 탄광 간부 빨래까지 도맡아…극악 노동환경에도 90% 진폐인정 안돼

(6)은퇴 선탄부 남춘자(85)씨와 최순옥(79)씨
삼척노인회 조사, 은퇴 선탄부 83명 중 9명만 진폐인정
광부 진폐등급 판정 시 10년 근무 기준, 선탄부는 20년
탄가루 속에서 도시락 끼니 지금은 약만 하루 열다섯개

각자의 사연을 안고 가장이 된 여성들. 그들에게 선탄장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남춘자(왼쪽)씨와 최순옥씨가 그간의 세월을 강원일보 취재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신세희기자

대한노인회삼척시지회의 조사에 따르면 삼척지역의 은퇴 선탄부는 총 83명이다.

이들 중 진폐장해등급을 받은 이는 9명으로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73세다. 뒤늦게 진폐인정을 받더라도 고령을 고려하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진폐 인정을 소원한다. 진폐 등급은 열악한 탄광에서 고생한 지난 날에 대한 보상, 훈장과도 같다.

구세진 광산진폐권익연대 회장은 “소규모 탄광에서는 선탄부들이 남성 탄광 근로자들의 괴롭힘뿐만 아니라 옷 세탁, 음식 준비 등 갖은 잡일을 담당하며 식모 역할까지 했다”고 말했다.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 소장은 “남성 광부들의 경우 만성폐쇄성질환이 걸린 상태에서 10년 이상의 탄광 업무 경력이 있으면 진폐장해등급을 받아 연금 등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 근로자인 선탄부들은 20년 이상 근무해야 경력이 인정돼 장해 등급을 받고 보상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전사는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를 이끈 탄광 뒤편에는 열악한 환경과 혹독한 노동 강도를 감수하면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낸 선탄부의 희생이 있었다.

남춘자 씨가 “선탄장에 취직한 지 3일 만에 손가락을 다쳤는데, 일자리를 잃을까봐 다친 사실을 숨겼다 못했다”며 제때 치료받지 못해 굽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세희기자

■‘탄가루 속의 도시락과 부러진 손가락’=선탄부의 삶은 ‘남편, 가장의 부재’라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부터 시작된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가장이 된 여성들. 그들에게 선탄장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정선 사북의 진폐상담소 사무실에서 만난 은퇴 선탄부 남춘자(85)씨와 최순옥(79)씨 역시 생계를 위해 선탄부가 됐다. 남춘자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27세에 함백광업소에 취직했다. 최순옥씨 역시 광부였던 남편을 탄광에서 산업재해로 잃고 36세 나이에 사북광업소에 발을 들였다. 갱 내부보다 어두웠던 선탄장에서 그들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선탄부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갑‧을‧병 근무조에 따라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오후 3시, 자정으로 나뉘었다. 수건 몇 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컨베이어 벨트 가장자리를 둘러싼 여성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벨트에 따라 그녀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허리를 펼 수 있는 순간은 30분 남짓의 점심시간 뿐이었다. 작업장을 채운 분진에 눈물과 기침이 터져 나왔고, 돌덩이에 맞은 손가락은 퉁퉁 부어 올랐다.

남춘자씨는 “선탄장에 취직한 지 3일 만에 손가락을 다쳤는데, 일자리를 잃을까봐 다친 사실을 숨긴 채 말하지 못했다”며 제때 치료받지 못해 굽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최순옥씨 역시 “아침에 싸온 도시락이 점심시간이면 차게 식어서 숟가락이 안 들어갔다”며 “시커먼 탄가루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그 처지가 어찌나 서럽던지 눈물 꽤나 흘렸다”고 했다.

최순옥 씨는 “아침에 싸온 도시락이 점심시간이면 차게 식어서 숟가락이 안 들어갔다”며 “시커먼 탄가루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그 처지가 어찌나 서럽던지 눈물 꽤나 흘렸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신세희기자

■‘매달 25일은 고기먹는 날…막내의 기다림’=금녀의 땅 탄광촌에서 선탄부들은 늘 눈치를 봐야 했다. 남성 광부의 출근길을 가로막으면 안 됐고, 관리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됐다. 남편의 부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퇴근과 동시에 작업복을 숨겼다. 탄가루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지만, 일터에서는 차별이 횡행했다.

최순옥씨는 “그 시절 남편이 없는 여성들은 늘 무시와 희롱의 대상이었다”며 “남편의 부재를 숨기기 위해 작업복 빨래는 늘 방 안에 숨겨서 말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탄광의 잡일 역시 모두 선탄부의 몫이었다. 남성 관리자들의 간식을 챙겼고, 빨래까지 도맡았다. 남성 광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자식들의 주린 배였다.

남춘자씨가 탄광에 취직한 1960년대, 휴일은 한 달에 고작 이틀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그조차도 쉬지 않고 추가 근무를 자처했지만, 생활고는 끝나지 않았다. 남씨는 “매달 25일이 월급날이었는데 막내가 고기 먹는 날이라며 그날 만 손 꼽았다”며 “어린 자식들한테 고기 한 번 배 터지게 못 먹인 게 아직도 한”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자식들에게는 늘 미안함이 앞섰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드물던 시대,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 퇴근이 없다는 뜻이었다. 교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이자 주부로 두 번째 출근이 시작됐다. 남씨와 최씨는 “힘들 때마다 자식들 다 키울 때까지만 참자고 버티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났다”고 입을 모았다.

■선탄부도 산업전사로 기억해달라=탄광을 거쳐간 수많은 여성들은 그 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지역 노인회, 진폐단체에서 등록된 선탄부의 수를 어림잡아 보지만 추정치에 불과하다. 산업 근간을 지탱한 광부이자 가족을 위해 헌신한 가장이자 엄마였던 선탄부. 그들에게 남은 건 희생에 대한 찬사가 아닌 아닌 병든 몸과 수북한 약봉지였다.

선탄장을 가득 메운 탄가루는 고스란히 폐에 쌓였다. 남춘자씨와 최순옥씨 역시 진폐로 고통받고 있다. 진폐장해등급 13급 판정을 받은 최 씨는 강원일보 취재진을 향해 매일 먹는 약봉지들을 펼쳐 보였다. 그는 “하루에 열다섯 알을 먹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줄인 것”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호흡이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진폐장해등급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증상에 따라 진폐판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춘자씨는 지난 2003년 진폐장해등급을 신청한 뒤 2010년에서야 11급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에 따라 진폐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양상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탄부의 경우 남성 광부들에 산업재해 보상 기준도 까다롭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산재보상의 경우 남성은 근속기간 10년 이상이지만, 선탄부는 갱 외부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근속기간이 15~20년 이상인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남씨와 최씨는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지만 그 덕에 이만큼이라도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며 “탄광 속 여자들을, 엄마들을 기억해 달라”고 웃어 보였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