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우리나라 국민이 2022년 말 기준 3,997만명(당해 연도 총인구의 77.4%)이니 국민건강보험 수준에 못지않다. 우리가 흔히 병원 접수창구에서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여부다. 혹자는 여기에서부터 환자와 보험회사, 의사와 보험회사 간 다툼이 시작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손의료보험이 보험가입자에게 실제 발생한 의료비, 즉 진료비계산서상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항목을 보상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진료의 적정성이나 인정범위를 둘러싸고 이해당사자간 분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진의 처치와 전문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입장, 불필요하거나 과잉진료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의사의 입장, 유의미한 치료라도 보험약관에서 정한 내용이 아니면 지급이 불가하다는 보험회사의 입장 모두 각각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특히 보건당국의 관리 하에 있는 요양급여와 달리 비급여 진료는 의료계에서 널리 인정되지 않는 최신의 의료기법 등이 요구되는 분야이고, 치료 방법의 결정이 대부분 의사와 환자 간 사적자치의 영역에서 이뤄지다 보니 논란이 더욱 심하다. 보상 실무현장에서도 이해당사자간 객관적 근거보다는 개별 경험과 주관적 판단을 우선 주장하다보니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으로 달리는 경우가 만연돼 있다. 급기야는 수사기관이 환자 또는 병원을 사기혐의나 의료법 위반혐의로 기소유예처분도 하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환자 등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취소 결정한 바도 있다. 보험계약은 보상하는 사고와 보상하지 않는 사고를 보험약관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보험 가입 시 보험설계사는 보상하는 사고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고, 보상하지 않는 사고는 언급하지 않거나 설명도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분쟁의 대부분은 보험회사가 보상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면책조항에서 발생된다. 실손의료보험 또한 면책조항의 해석을 두고 잦은 다툼이 발생하는데 그 주요 유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는 보상하지 않는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에서도 동일하게 보장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둘째, 영양제, 비타민제, 호르몬 투여, 보신용 투약, 친자확인을 위한 진단, 불임검사(수술, 복원술 포함), 성장촉진, 의약외품과 관련해 소요된 비용은 보상하지 않는다. 셋째, 코성형 수술, 유방 확대(유방암 환자의 유방재건술은 보상), 주름살 제거술, 외모개선 목적의 다리정맥류 수술, 사시교정 등 외모개선 목적의 치료는 보상하지 않는다. 쌍꺼풀 수술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안검하수, 안검내반 등을 치료하기 위한 시력개선 목적의 이중검 수술은 보상한다. 넷째, 단순한 피로 또는 권태, 주근깨 치료, 노화현상으로 인한 탈모, 발기부전 등도 보상하지 않는다. 단순 코골음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제외하나, 수면무호흡증은 보상한다. 차제에 소비자가 자신이 가입한 보험 상품이 어떤 사고에 대해 얼마만큼 보상을 해줄 것인지의 여부를 사고가 난 후에야 확인하는 불합리한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의료계 또한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한 환자에게는 통상의 의료경험칙에 반해 과도한 진료태도를 취해서도 아니 된다. 아울러 보험가입 시에는 문턱이 없을 정도로 넓디넓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에는 좁디좁게 문을 여는 보험회사의 잘못된 행태도 청산돼야 할 적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