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유공자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21대 국회에서 끝내 제정되지 못했다. 1998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돼 21대 국회까지 매번 발의됐으나 주무부처인 국가보훈부와 보수 정당들의 반대로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가보훈부에서는 민주유공자의 경우 4·19 혁명과 5·18 민중항쟁에 관련된 유공자들만 인정하고 있어 그 외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많은 분들은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강릉에는 1986년 서울대 1학년 재학중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고(故) 김성수 열사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소중한 아들을 잃고 당신의 아들을 누가, 왜 죽였는지 밝히기 위해 38년의 세월을 거리의 집회장과 농성장에서 보내셨다.
이제는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셨다. 그동안 부모님의 헌신과 유족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투쟁의 결과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음’을 인정받았고 또한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는 온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모님은 2021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였으나 올해 3월 최종적으로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각하 결정을 통보받았다. 국가유공자법 제정으로 명예회복이라도 바랐지만 안타깝게 이것마저 좌절됐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국가들 중 유일하게 높은 수준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루고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이러한 성과는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뤄졌음을 똑똑히 알고 있다. 이제는 열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열사의 부모님은 2014년 열사의 모교인 강릉고에 건립된 추모비에 산책 삼아 들르는 것이 하루의 일과라고 하셨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져서 추모비를 찾는 일도 많이 힘들어졌다. 부모님이 눈을 감기 전에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돼 자식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우리 사회 민주화에 디딤돌이 됐음을 보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