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의사단체가 또다시 휴진을 예고하면서 지역사회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아파도 지역에 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 이전부터 장거리 통원을 감수해온 강원지역 주민들은 전공의 이탈, 공중보건의사 공백과 대학병원 교수진의 '휴진 선언'까지 이어지자 더욱 심화된 병원·의사·돌봄 부족의 삼중고 속에서 시름하고 있다.
정부는 올 2월부터 각 대학병원에 배치된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자 지역 보건소와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일하던 공중보건의사를 차출, 수도권 대형병원 등에 파견했다. 강원지역 각 시·군에 파견된 공중보건의사 수는 당초 34명에 달했고, 최근 의과대학 교수까지 휴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면서 17일까지 26명의 공보의가 아직까지 각 지역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2024년 들어 강원자치도내 전체 공중보건의 수가 지난해 기준 270명에서 248명까지 줄어드는 등 지역에서 일하던 의사마저 지속적으로 감소, '의사 없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은 어떤 해결책 찾아야 하나.
정부의 '지역의료 확충' 방안에서조차 실질적인 지역 공공의료기관 운영 지원, 지역 의사 유지 방안 등이 주요 정책에서 빠지면서 지역의 시름은 더욱 깊어간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의사들의 의료 현장 이탈로 인한 피해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은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강원일보는 지역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근 지역, 중앙, 국제보건을 두루 거친 두 명의 공공의료 분야 전문가와 마주앉아 대담을 진행했다.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은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의과대학 조교수 등을 두루 거치며 시민사회와 학술 양쪽에서 시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해 온 연구자이자 활동가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2017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으로 활동하는 한편, 평창군보건의료원장 부임 전까지 경기도 안산시의 상록수보건소장, 경기도감염병관리지원단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예방의학 전문의이기도 한 두 사람은 최근 평창군이 주도하는 '공공의료 체계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통해 한국의 지역에서 가능한 광역 지자체간, 지역 내부 협력 시스템의 바람직한 방안을 만들고 있다. 반복되는 '의료 대란'속에서 두 사람은 어떤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인터넷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두 사람을 연결, 대담을 진행했다.

정부가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마땅한 방안이 안 보인다. 최근 흐름 어떻게 보나.
△박건희 : 일단 취약지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독자적인 생존이 매우 어렵다. 현재 연구 용역을 통해 평창군 보건의료원의 기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의 중인데, 인력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답이 잘 안 보인다.
△김명희 : 맞다. 사실 의료취약지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광역지자체와 국가가 책무성을 가지고 지역 시스템을 조정하지 않는 한 의료기관의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평창군 보건의료원 체계 개편을 위한 용역에서도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있다. 우선 지방의료원만 두고 봐도 운영이 매우 어렵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차원에서 충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인력 문제로 초점을 좁힌다면 지역에 있는 소규모 의료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채용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강원도를 두고 보면 강원대병원도 현재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신통한 답을 내 놓기 힘들다. 그렇다면 양성의 문제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서로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서 분배하는 안을 내 볼수 있는 것 아닌가?
△박건희 : 맞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추진하는데, 학칙 개정이 맞물리는 시점인 만큼 강원자치도가 대학과 협력해서 강원대 입학인원 전부를 지역의사전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입학할 때부터 지역에 복무하도록 서약하고 전부 장학금으로 교육과정부터 수련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안을 두고 의사단체가 가만히 있을까? 지금까지 제기된 많은 개혁안이 의사단체의 반발로 좌초됐다.
△박건희 : 지역 안에서 지자체 주도로 공감대를 모아서 제도를 새로 시작하는 정도는 가능한 부분이라고 본다.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는 부분 아닌가.
△김명희 : 인력 문제의 경우 이와 더불어서 공중보건의 제도 개편도 필요하다. 공중보건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 제도 유지는 불가능하다.

어떤 방식인가?
△김명희 : 성별 구분 없이 모든 의사가 경력 초기에 2년 정도 농어촌지역 근무를 의무적으로 하는 식이다. 현재의 의사 수련 제도는 지역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의사의 임상 전문과목과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언제부터 팔꿈치 아플 때 팔꿈치 전문의 찾아가는 식으로 고도의 전문의를 찾아서 진료를 받았나. 이렇게까지 모든 의사들이 고도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식은 지역 주민의 필요와는 맞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도록 트레이닝을 받은 의사들이 다시 공중보건의를 하면서 지역에서 일하도록 하는 방식 역시 주민의 필요와 맞지 않다. 물론 젊은 의사들의 커리어 관점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애초에 경력을 시작하는 의사들을 뽑은 뒤 사회복무에 대한 메리트를 주고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낫다. 근무를 마친 후 필요하다면 본격적인 세부전문의 과정을 밟아 경력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건희 : 공중보건의 제도를 지역의료 전문가 과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일차의료만 두고 봐도 공중보건의의 역할을 활성화해 훨씬 개선할 여지가 크다. 현재 지역의료 위기는 공중보건의 제도를 방치한 의료 체계의 책임도 있다. 아까 이야기한 네트워크 진료 방식과 연계해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강원 남부라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영월의료원에서 순차적으로 2~3개월 가량 수련받은 뒤 보건의료원과 보건지소 등 일차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식이다. 아울러 근무하면서도 초기 수련받은 병원의 내과나 가정의학과 의국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도를 받는 방식이다. 지역 의료기관은 이미 의사 한 명 유치하는데 3~4억씩 쓸 마음이 있는데, 지역의료 전문가 과정으로 의사를 유치한 뒤 그에 걸맞는 급료를 지급, 합당한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과 공중보건의 과정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젊은 의사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일차의료와 관련해서는 평창군에서 시범적으로 진행 중인 모델이 있다고 들었다.
△박건희 : 환자를 중심으로 의사, 간호사, 영양사, 운동처방사 등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직군이 협업, 주민에게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권역별로 방문 진료 등도 계획하고 있고, 최근 가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 한 분이 오셨는데 아주 인기가 많으시다. 아직 한국 시민들이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본격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지 않으나 가까이에서 주민의 건강관리를 잘 해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있다면 굳이 큰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현재는 이런 시스템을 민간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재정보상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에, 초기에 공공에서 책무성을 가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민간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불보상체계를 만드는 것이 무척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김명희 : 맞다. 흔히 주민들이 큰 병원만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표현할 말이 '큰 병원'이었던 것 뿐이지, 정말로 그런 방식을 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까이에서 포괄적으로 주민의 건강관리를 해줄 수 있는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점에 공감대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자원 측면에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의 자원이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다. 알래스카처럼 아주 격오지에 위치한 지형은 아니지 않나. 주민 가까이에서 효율 좋은,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지금 평창을 비롯한 강원자치도내 각 시·군이 충분히 선도적인 사례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주민이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