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대란'이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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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화 사회체육부 기자

사직, 휴진, 복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공방을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다 돼 간다. "증원하자," "의사 수는 이미 지금도 충분하다." 의미 없는 돌림노래가 끝나지 않는다.

이 난리 통 속에서 '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처음의 목표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지역'이라는 단어가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에 들어갈 후렴구처럼 쓰이고 있기 때문일까. 지역과 의료에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도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이 '의료 공백' 사태가 통치의 위협이 되자 정부는 지역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를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파견했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주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에서 의료와 건강을 취재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어제까지 농민이고, 노동자고, 재난 피해자였던 주민을 다음날 병원에서 환자로 마주하는 장면이다. 의료진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자도 아닌 주제에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나는 반갑게, 혹은 걱정하며 인사한다. 주민들의 사연 속에 지역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에 물려 고열에 시달리다, 이미 중증이 돼서야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된 80대 노인,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가정의 생계를 꾸리고, 동시에 돌봄노동을 하느라 성한 곳이 없어진 접경지의 여성 농민. '지역의료'는 정부가 내세우는 선전 속에 있지 않다. 다만 주민의 삶 속에 있다. 의료는 그 '삶' 속 힘든 순간을 넘기도록 보조할 뿐이다. 지금 '지역의료'라는 단어가 공허한 까닭은 논의 속에 주민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관점으로, '대란'이 끝난 뒤를 상상한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게 정부는 연일 "돌아오라"는 호소를 반복한다. 돌아와 달라, '의료 개혁'을 함께 하자. 정부가 보내는 핵심 메시지다. 전공의가 돌아오면 이 사태가 끝난다는 식의 낙관적인 전망도 함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5개월 '의료 대란' 뒤 진실, 농·어촌 지역 주민들은 50여 년 넘는 숱한 세월을 '대란' 속에서 살았다. 그곳에는 대학병원도 없고, 돌아올 전공의도 없다. 유일한 의사인 공중보건의는 날로 줄어든다. 젊은 의사 태반은 서울과 교육 특구에서 나고 자라 특권을 온몸으로 대변한다. 누구도 이들을 지방으로 보낼 수 없어진 지 오래다. 정부가 이름 붙인 '대란'이 끝나는 지점에서 주민의 삶 속 대란은 이어진다.

주민들은 묻는다. 전공의가 돌아오면, 이 '대란'이 끝나면 주민의 삶이 나아지냐고 말이다. 정부의 대답을 서둘러 추측하거나 비관하지 않겠다. 다만 의사의 계급적 권력에 절절매기보다 시민의 의문에 답하고, 주민의 요구에 집중하는 편이 백번 낫다는 점을 전해 둔다. 근대 이래 시민이 의료를, 의사를 중히 여겨 온 까닭은 이 제도가 시민이 규정한 책임과 권한 아래 위치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정부, 국회와 지방의회 역시 시민이 부여한 권력 아래 존재한다. 예산과 제도로 현실을 바꿔낼 권한은 이미 중앙과 지역 모두에 있다. 이제 시민의 필요에 답하라.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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