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추석물가와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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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정 경제부장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1980년 대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을 주도하는 등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전두환 대통령. 그는 1980년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물가를 잡으려면 인기 없는 정책을 할 수밖에 없고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980년 당시 우리나라는 2차 오일쇼크로 물가 상승률은 28.7%, 실업률은 5.2%로 치솟았다. 그해 경제 성장률은 -1.6%였다. 김 수석은 과감한 안정화 정책으로 1982년 물가상승률을 7.1%로 낮췄고 1980년대 말까지 2~3%대로 유지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저성장, 고물가, 경상수지 적자의 3중고에 시달리던 우리나라 경제는 1980년대 후반엔 10%대 성장, 물가 안정, 국제수지 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물가와의 전쟁이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배추국장, 무국장 등 품목별 담당관까지 두고 물가 잡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직거래 등을 통한 유통 경쟁체계 도입과 양파, 무의 국내산 비축 추가 및 계약재배 확대 등을 담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물가 폭등은 재현됐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에는 각종 선물세트와 제수용품이 넘쳐나며 명절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된 경기 침체에 서민들의 입에서는 못살겠다는 한탄만 나온다. 치솟은 물가 때문이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 닿는다. 윤석열 정부의 물가정책이 앞선 정부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물가협회가 전국 주요 전통시장의 28개 차례용품 가격을 조사했더니 4인 가족 기준 올해 추석 차례상 예상 비용이 28만7,100원으로 지난해 추석 때보다 9.1% 올랐다. 28개 품목 중에서 23개 가격이 올랐는데 도라지, 고사리, 곶감, 대추, 밤, 배는 1년 전보다 20% 이상 상승했다.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김치부터 케첩, 후추 등의 식품가격도 10~20%까지 잇따라 오르면서 밥상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장마 이후 폭염이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농산물 가격은 천정부지다. 서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물가 급등으로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고 가계대출 이자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식탁물가 공포가 서민들의 소비심리를 억눌러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 물가가 2% 정도로 전년에 비해 안정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2%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미 오를대로 다 올랐는데 2% 오른 게 뭐가 중요하냐", "시장, 마트는 가보고 하는 소리냐" 등의 불만이 팽배하다. 정부가 추석 성수품을 평소보다 1.6배 늘려 가격 안정화를 도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미덥지 않다는 분위기다. 민심은 밥상이나 차례상을 차리는 장바구니 물가에서 나온다. 정부·여당에게는 물가 관리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서민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추석 민심 또한 좋을 리 없다. 바닥권인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물가안정은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할 정책이다. 물가는 국민들의 심리와 직결돼 있다. 먹고사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물가를 잡지 않고서는 국민이 행복한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오일쇼크를 이겨냈던 지혜와 저력을 정부가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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