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을 인정하기 더 어려워한다. 마음의 병은 부모의 이혼, 유년기의 학대, 충격적인 사건 등을 겪는 것과 같이 인생에서 심각한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에게나 생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별문제 없는 가정에서 큰 굴곡 없이 자란 사람이 마음의 병을 앓으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누리는 호강을 모르고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진 한심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관계로 겪는 스트레스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유리멘탈’을 지닌 심약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아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누군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하게 자신을 지키지만, 누군가는 사소한 고민에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겉보기에 멀쩡한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며, 헌신적인 남편이라고 해서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부모에게는 금쪽같은 자녀가 소중하고 귀엽기만 하겠지만 자신의 자녀만 우선하는 ‘진상’ 부모들의 몰상식한 언행과 ‘갑질’은 교사들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큰 부담과 마음의 고통을 주기도 한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과 괴로움이 있다.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나의 아픔에 경중을 매길 수 없듯 다른 사람의 아픔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젊은 층인 MZ세대의 과반수가 자살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알려진 마음의 병, 우울과 불안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분명한 신체적 위해 행동에 비해서 모호한 마음의 상처는 의도치 않게 무심코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인 것보다 더 심각하고 아프며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도 당당한 ‘멘탈 갑’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악플’이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제대로 변명조차 못 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마음이 여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착하고 바르게 살고 있다고 믿지만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실책도 있다. 타인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처 보살피지 못한 타인의 상처를 통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되돌아보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판단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 자신을 위로하며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불쾌한 경험과 기억,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며 스스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혼잣말,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마음의 상처는 표현할 때마다 크기가 줄어들고 치유된다.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도움과 필요한 제도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정부에서도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치료에서 예방 중시로 정책 전환을 시사한 바 있다. 마음이 다치면 외로움도 함께 오며 세상은 웃고 나만 우는 듯 느껴진다. 그렇지만 잘 찾아보면 아픈 마음 곁에는 그 마음을 위로하는 더 아픈 마음이 있다. 주변의 부당한 압력이나 요구, 근거 없는 비판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대응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리셋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역경과 시련을 토대로 도약할 수 있는 정신력인 ‘회복 탄력성’도 키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