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국민 작사가 박건호 선양사업 지속돼야

한필수 전 원주MBC보도부장

음악회는 장르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대를 꽉 메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할 때는 장중함과 격조 높은 선율을 느끼게 되고 피아니스트 손열음과의 협연이 이어질 적에는 그의 몸동작에 따라 흥분이 고조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클래식 음악회에는 꼭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해야만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졸업을 즈음한 음악회는 아쉬움으로 가득한 무대일 것이고 7080콘서트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중년의 분위기라면 가곡의 밤에 초대되는 계절에는 마음 한구석 차분해지는 음악회로 기억될 것이다.

고인이 남긴 보석 같은 작품으로 꾸며지는 음악회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이자 작사가인 박건호는 약관으로 접어들던 1969년에 첫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내며 작가로서 입문한다. 그로부터 두어 해를 지나면서 노랫말 명곡 ‘모닥불’로 박인희와의 인연을 맺는다. 일찍이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가요 모닥불 때문이었다. 박건호 하면 음유시인이요, 음유시인 하면 박건호를 떠올린다. ‘모닥불’은 언제 들어도 불세출의 명곡이니 그 시절 써 내려간 주옥같은 노래에 감동하는 터인데 그가 남긴 숱한 곡들은 한 땀 한 땀의 시(詩)요, 에세이이며 달달하게 속삭이는 귓속말 언어였다.

원주 치악체육관 특설무대는 2,500여명의 관객으로 가득 채워졌다. 박건호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제1회 박건호음악회의 매머드 무대다. 전영록을 비롯해 설운도, 김수희, 송가인, 심신 등의 가수들로 이들은 박건호로부터 노랫말을 받아 성장한 가수이거나 이른바 박건호 사단의 얼굴들이다. 다만, 오늘 출연진 가운데 박건호의 노랫말을 받지 못한 가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타계하고 난 후에 연예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 할 것 없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자신의 대표곡과 함께 박건호가 노랫말을 붙인 노래를 반드시 부른다. 추모음악회의 특징이고 고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가요사에 남긴 업적이 대단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물론 이용의 잊혀진 계절,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등의 곡들 모두 박건호가 쓴 노랫말이다.

박건호가 우리 곁을 떠난 날이 2007년 12월9일이다. 온 세상에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벌써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여권의 시집과 다수의 에세이집 그리고 3,000여곡의 노랫말을 남기고 떠난 박건호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에도 박건호의 업적을 기리려는 지역 문인들과 후배들이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박건호가요제를 비롯해 박건호시낭송회 등의 행사가 그것이다.

제1회 박건호음악회는 올해 첫 닻을 올렸으니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선양사업이 계속 이어지도록 힘을 쏟자.

“친애하는 건호 형! 지난 시절 우리는 형께서 만든 곡을 들으며 위안을 받고 살았나이다. 그저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갈음하는 것이 송구할 뿐이옵나이다. 건호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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