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천후산, 명명 신중해야

이선국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이선국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설악산의 상징인 울산바위를 ‘천후산(天吼山)’으로 명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깜짝 놀랐다. 고유의 아름다운 이름을 찾겠다는 의욕은 높이 평가하지만 우선 그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일이다. 먼저 사료를 살펴보자. 1530년 만들어진 대표적인 옛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45권 간성군편에는 “천후산은 고을 남쪽 70리에 있고, 미시파령은 고을 서남쪽 80리쯤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1633년 택당 이식 선생의 ‘수성지(水城志)’, 일명 ‘간성지’, 1829~1831년 편찬된 ‘관동지(關東誌)’, 1884년 편찬된 ‘간성군읍지(杆城郡邑誌)’ 등 많은 읍지와 지리서에도 “천후산은 군의 남쪽 70리에 있다. 산에는 동굴에서 부는 바람이 많으며 산 중턱에서 나온다. 이를 두고 하늘이 운다고 하며, 세간에 전하기를 양양과 간성 사이에는 큰 바람이 많은데 이 때문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산에는 성인대(聖人台)가 있고 돌의 모양이 불상을 닮아서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 옆의 큰 돌은 곡식창고 같아서 세간에서는 화암(禾岩)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이곳에서 수자리(防戍)를 살면서 짚으로 이 돌을 감싸 적에게 식량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여서 물리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미시파령(彌時坡岺·지금의 미시령) 역시 “고을 남쪽 80리에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화암사(禾巖寺)에 대해서는 “천후산과 미시파령 아래에 있다. 화암이 오른쪽에 있어 그런 이름이 생겼다. 절은 큰 산 중턱에 있는데, 가깝게는 영랑호와 마주하고 있으며 멀리 푸른 바다와 마주하고 양양(襄陽)과 간성(杆城)의 여러 산과 평원을 두루 바라볼 수 있다. 깊은 골짜기는 모두 궤석 아래 있는데, 곡탄공활(谷呑空闊)한 형상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절 뒤쪽에 있는 석상(石床)의 폭포는 모두 예사롭지 않아서 능히 감상할 만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영조 때 신경준 선생이 쓰신 ‘산경표(山經表)’, 1759년 편찬된 ‘여지도서’ 간성군편 등 지리서에도 같은 기록들이 전한다.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천후산과 울산(蔚山)을 별도 구분 표기하고 있다. 1912년께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지자료’에는 천후산은 보이지 않고, 울산암(蔚山巖)만 보인다. 1911년과 1913년에 측도된 ‘조선지형도’에도 울산암, 선인치(仙人峙), 신선암(神仙巖), 신선봉(神仙峰) 등만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천후산 표기는 점차 보이지 않는다.

한편, 1931년 제작된 ‘전승명승고적’ 간성군편에도 천후산에 대해 ‘수성지’와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천후산은 분명 미시령의 북쪽에 있고, 그 아래 화암(일명 수바위)이 있다. 설령, ‘울산바위’를 ‘천후산’이라고 억지로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미시령’은 아마도 지금의 설악산 ‘저항령’ 고개쯤이 될 것이고, 또 ‘성인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역사는 기록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지리서와 사료에서 또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코 심증과 주장만으로 역사를 바꿀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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