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민사 항소이유서 제도

허경은 춘천지방법원 판사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이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그 결과가 몇 년씩 지연된다면 국민의 권리는 온전히 보장될 수 없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민사소송법과 민사소송규칙이 개정되었고, 2025년 3월 1일부터 민사 항소이유서 제도가 시행되었다(2025년 3월 1일 이후 최초로 항소장이 제출된 사건에 적용된다).

기존에는 항소장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항소심 절차가 시작되었다. 구체적인 항소이유는 변론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났고, 이로 인해 재판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빈번했다. 그러나 이제는 항소인이 단순히 항소장만 제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항소기록접수통지를 받은 날부터 4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별도로 제출해야 한다. 이 기간은 한 번에 한하여 1개월 연장할 수 있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항소는 결정으로 각하된다(민사소송법 제402조의2 제1, 2항, 제402조의3, 제1항). 이 점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자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다.

또한 항소이유서에는 제1심 판결 중 사실을 잘못 인정한 부분이나 법리를 오해한 부분, 절차상의 하자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하고(민사소송규칙 제126조의2). 항소심은 이 항소이유를 중심으로 심리를 진행한다. 법원은 피항소인으로 하여금 항소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다(민사소송규칙 제126조의3). 이를 통해 법원은 보다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심리를 진행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도 예측 가능한 절차 속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뒤늦게 제출하는 것에 대한 제한이다.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을 넘겨 새 주장을 하는 경우, 법원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각하할 수 있다(민사소송규칙 제126조의2 제4항). 항소심이 다시 1심처럼 처음부터 모든 쟁점을 심리하는 것을 막아, 재판의 신속성과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다. 물론 소송의 완결을 지연시키게 하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등에는 허용될 수 있다.

증거신청 절차에도 변화가 있다. 항소인은 원칙적으로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필요한 증거도 함께 신청해야 한다(민사소송규칙 제127조의4 제1항). 또한 증거를 신청할 때에는 해당 증거가 ‘제1심에서 조사되지 아니한 데에 대하여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고 그 신청으로 인하여 소송을 현저하게 지연시키지 아니하는 증거’ 등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여야 한다(민사소송규칙 제127조의4 제2항). 항소 초기에 쟁점과 증거를 모두 정리함으로써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번 제도는 가사소송과 행정소송에도 원칙적으로 적용된다. 다만, 특허법원 사건 등 일부 2심제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개정은 단순히 절차를 까다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보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재판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항소인이 단순히 항소장을 제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주장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다툴 수 있도록 하고, 법원 역시 명확한 쟁점을 중심으로 집중 심리를 진행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항소를 고민하는 국민들은 이번 개정의 취지를 이해하고, 달라진 절차에 맞추어 신중하고 구체적인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법원과 국민 모두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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