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이 설계대로 시공되는지를 감독하는 감리업체들이 총 5천567억원에 달하는 공공입찰 물량을 안정적으로 나눠 먹으려고 짬짜미를 벌였다가 거액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20개 건축사사무소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37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이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조달청이 공공건물·공공주택 건설을 위해 2019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발주한 92건의 감리 용역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거나 들러리 참가를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이들은 입찰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몰 비용을 낮추며 과도한 경쟁을 피하려 서로 짠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 등은 최저가 낙찰로 감리 품질이 저하되자 기술력 위주로 평가하는 종합심사 낙찰제를 2019년 도입했다.
이렇게 되자 투찰을 위한 제안서 작성과 발표·면접 등 준비에만 20∼30명이 투입돼야 했다. 낙찰되면 다행이지만 탈락하면 그만큼의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2019년 케이디·토문·목양의 모임에서 LH 발주 입찰 4건에 대상으로 시작된 담합은 점차 세를 키웠다.
2020년에는 케이디·토문·건원·무영·목양 등 5개 사가 1개사당 용역비 총합이 718억∼719억원 수준이 되도록 65개 공구를 나눈 뒤 제비뽑기를 통해 배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실제 입찰에서는 45건의 담합이 실행됐다.
일부 업체들은 큰 틀의 합의 외에도 2022년까지 개별적으로 28건의 입찰에서 담합 합의를 한 사실도 적발됐다.
LH 입찰 담합은 조달청 발주 입찰까지 번졌다. 토문·건원·선은 각자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동일한 입찰에서 경쟁하지 않고, 유찰 위험이 있으면 들러리를 서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15건에서 합의가 실행됐다.
결국 담합에 따라 공공시설의 안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일부 공공주택 분양가 상승의 요인이 됐으리라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사무소별 과징금은 무영 33억5,800만원, 건원 32억5,400만원, 토문 31억3,300만원, 목양 30억3,500만원, 케이디 23억7,400만원, 행림 19억1,100만원 등이다. 1건의 입찰에 들러리로만 참가한 3개 사에는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과징금이 부과된 17개 사무소의 법인과 임직원 17명은 지난해 7월 검찰의 고발요청권 행사에 따라 고발됐으며, 기소돼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