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지역 환아 위한 포털 역할, 어린이병원이 해내야"…강원대병원 소아과 대가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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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원대병원으로 온 네 교수
"지역 어린이들 적절한 치료 받을 수 있기를"

"어린이병원은 단순히 의료만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아픈 어린이 뿐 아니라 어린이를 돌보는 보호자, 그리고 가정의 재정적 부담까지 덜게 하는 포털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21일 강원대병원 인근 한 식당, 지역에서 어린이병원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강원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희영(70) 전 서울대 어린이병원학교장의 말이었다. 듣고 있던 황용승(75)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가 어느 지역에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지역이 거점이 돼야 한다는 것, 강원대 어린이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병일(69), 김호성(62), 신희영(70), 황용승(75) 교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어린이의 건강과 행복'은 이 네 대가들을 서울에서 춘천까지 출퇴근하게 만든 목표였다. 네 교수는 모두 서울대병원에 근무한 뒤 퇴임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서울대 의대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오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춘천에서 꾸는 꿈은 무엇일까, 또 어린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바쁜 진료 일정을 쪼개 김호성, 신희영, 황용승 교수, 그리고 강원대병원의 박진성 소아청소년과장과 만남을 가졌다.

서울대병원 출신 명의들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강원도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신희영(왼쪽부터) · 황용승 · 김호승 교수가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신세희기자
◇김병일 교수

■"후원회 없는 어린이병원 아쉬워"=대한적십자사 회장, 서울대 어린이병원학교장, 서울대 연구부총장 등을 지낸 신희영(70)교수는 현재 강원대 어린이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4인방 중 가장 빨리 강원대병원에 자리잡았다. 계기는 지난해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한 국립암센터 사업이었다. 신 교수는 "소아암 전문의가 없는 강원지역 어린이들이 가까운 곳에서 진료를 받게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신 교수가 '원거리 통근'을 감행한 이유다. 신 교수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일은 또 있다. 바로 아픈 어린이들을 지역에서 후원할 수 있는 제도 구축이다. 신 교수는 "미국 유수의 병원들은 모두 어린이병원 후원회를 두고 아픈 아이들 가정의 가계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며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지역사회를 위해, 이제 춘천과 강원도에서도 강원대 어린이병원 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희영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불안한 보호자까지 달래는 의료=지난 3월4일 합류한 황용승 교수는 서울대 어린이병원장, 대한소아신경학회장 등을 역임한 소아신경 전문가다. 2008년에서 2013년 사이에는 대통령실 소아청소년과 자문의를 역임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강원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소아신경 전문의가 더 이상 근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면서 춘천에서 근무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간질, 발달장애 등이 포함된 소아 신경질환은 의사와 환아 그리고 보호자가 오랜기간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황 교수는 진료때마다 나비넥타이를 맨다. 진료실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 친근감과 안심을 주려는 황 교수의 마음이다. 황 교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뇌전증,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꾸준히 만나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보호자와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용승 소아신경과 교수

■"진료 못 받는 어린이 만나는 것 큰 보람"= 김호성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질환 중에서도 예민하고 섬세한 심장질환을 다룬다. 심혈관도자술 800차례, 소아심장 초음파 4,000차례나 시행 했을 정도로 경험 많은 베테랑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전임의·조교수를 마치고 서울대병원에서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에서 소아심장전담의로 6여년을 근무하기도 했다. 김 교수가 춘천에서 근무를 하게 된 이유도 순전히 어린이들을 위해서였다. "아파도 병원에 못 오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다"고 운을 뗀 김 교수는 "지역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일주일씩 열을 앓는 어린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아들을 위해서 고된 야간 당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린이들이 아플 때 병원 못 가는 일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김 교수가 불철주야 뛰는 이유다.

김호성 소아심장과 교수

■중환자실 근무 불사하는 의사선생님 마음=이날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지만 어린이병원 어벤저스 중 한명인 김병일 교수는 이른둥이(미숙아) 분야의 국내 개척자이자 선구자로 통한다. 대한신생아학회장 등을 지냈고, 2016년에는 이른둥이 치료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가장 여린 몸, 신생아 환자들의 치료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 무게도 남다르다. 이날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도 신생아중환자실 진료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그 무게감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밤낮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다"는 말로 담담하게 전했다. 신생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김병일 교수가 은퇴생활까지 포기하고 춘천으로 달려온 단 하나의 이유다.

■ 강원대 병원은 '활짝'=각 분야 베테랑들과 함께하는 강원대병원 의료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박진성 소아청소년과장은 "천군 만마를 얻었다"는 말로 4명의 어벤제스 합류에 대한 소감을 표현했다. 이어 "성인도 그렇지만, 소아청소년은 특히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없으면 중환자를 받기 어렵다"며 "중환자 어린이들이 먼 거리로 진료를 받으러 다닐 뻔 했는데, 선배님들이 와 주셔서 지역에서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벤저스'로 불릴 만큼 각 분야 대가들을 모은 데는 조희승 강원대 어린이병원장의 헌신도 있었다. 조희승 현 강원대 어린이병원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련을 하던 시절부터 환자를 위한 마음과 행동으로 선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희승 교수가 와 달라고 하는데, 외면할 수가 없더라" 황용승 교수의 '증언'이다.

◇조희승 강원대 어린이병원장

조희승 강원대 어린이병원장은 “강원대 어린이병원을 위한 귀한 발걸음을 해준 교수들에 감사하다”며 “훌륭한 분들을 모신 만큼 강원지역의 신생아, 어린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의료공백의 어려움 속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린이들의 건강을 돌봐주시는 선배님들에게 같은 의사이자 후배로서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며 "앞으로도 의료진 확충을 위해 노력해 도내 유일 국립대병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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