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형사소송법이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며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법문 수정을 넘어, 형사절차 전반에서 피해자의 참여권과 절차적 지위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피고인의 일방적인 공탁에 대한 절차적 견제, 둘째는 피해자의 소송기록 열람·등사권 보장이다.
먼저, 지난해 10월 공포되어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인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는 소위 ‘기습공탁’을 제어하기 위한 조항이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 회복을 시도할 수 있도록 공탁법이 개정된 이후 피고인이 판결 선고 직전에 피해자에게 금전을 공탁하는 일이 있었고, 피해자는 재판이 끝난 뒤에서야 공탁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였으며, 원치 않는 금전 수령이 오히려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새롭게 도입된 조항은 피고인이 공탁을 했을 경우 재판부가 판결 전에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 보완이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권과 재판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두번째 변화는, 지난 3월 공포되어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형사소송법 제294조의4 제3항의 개정이다. 이 조항은 피해자의 소송기록 열람·등사권을 실질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 등이 소송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하는 경우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때 이를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정된 법은 “권리구제나 진술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허가해야 한다”는 원칙적 허가주의로 전환했다. 여기에 더해, 열람이나 등사를 제한하거나 조건부로 허가할 경우, 그 사유를 피해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사법절차에서 피해자는 더 이상 ‘증거 제공자’나 ‘수동적 진술인’이 아니라, 권리 회복의 주체이자 절차적 정의의 당사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의견을 밝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형사절차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려운 영역이다. 특히 고소인이나 미성년 피해자,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 등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 제2항과 제3항도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을 보장하고, 필요한 경우 비공개 심문 절차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도 피해자가 미리 알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럴 때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등 기존의 지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성폭력, 아동학대, 특정 강력범죄 사건 등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인이 선임되며, 수사 및 재판 전반에서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변호인은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을 정리하고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공탁 통지나 기록 열람 등 절차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직 해당 제도의 존재를 모르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안내와 접근성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위한 입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권리는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이 법 해석과 재판 실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