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정연수의 ‘탄광촌 기행’]지하 1㎞ 수갱과 하늘을 나르는 석탄 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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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석탄문화 세계유산화’
(9)탄광 모빌리티: 수갱, 사갱, 삭도, 선탄장

태백장성광업소 수갱

■수갱, 대형광업소의 랜드마크

수갱(垂坑)은 수직으로 뚫린 갱도로, 거대한 엘리베이터처럼 지하 수백 미터를 오르내렸다. 수갱 철골타워는 대형광업소의 상징이자 대규모 심부 개발을 가능케 한 생산성의 징표였다. 채탄 기간이 길어질수록 심부화가 진행되는데, 지그재그형의 사갱 만으로는 생산과 운반에 한계가 생겨 수갱 건설이 필수적이었다.

태백 강원탄광이 1962년 완공한 제1수갱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직갱으로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되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장성광업소의 제1수갱은 1969년 696m로 준공된 후 1,006m까지 연장돼 국내 최장 기록을 보유했다. 장성광업소 1수갱은 철탑이 갱내에 설치되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1985년 완공한 2수갱 타워는 야외에 설치된 데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밝혀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준공된 수갱은 정선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수갱이다. 수갱이 완공될 때마다 광업소는 ‘본격적인 심부 탄광 개발 시대의 시작’으로 기념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1988년 사북광업소 수갱 완공 다음 해에 석탄합리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수갱 건설의 열망과 산업 쇠퇴가 엇갈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1950년대의 도계 심포리-태백 통리 구간 인클라인

■사갱과 강삭철도, 그리고 스위치백

경사를 따라 뚫린 사갱(斜坑)은 모든 광산의 핵심 수송 갱도였다. 사갱의 레일을 따라서 석탄과 자재를 수송하고, 광부들이 출퇴근하는 생명줄 역할을 했다. 수갱과 사갱 모두 로프를 움직이는 권양기가 핵심 동력원이었으며, 탄광 모빌리티 시스템에서 권양기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삼척 도계에서 태백 통리지역으로 가는 높은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강삭철도를 놓았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개통한 심포리-통리 구간의 강삭철도(일명 인클라인 철도)는 600마력 권양기로 작동되었다. 강철 와이어(강삭)로 화물열차를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구조였지만, 승객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해당 구간에서 내려야 했다. 기차 승객들은 심포리―통리 1.1㎞ 구간을 도보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 때 짐을 대신 들어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나기도 했다. 1963년 강삭철도 자리에 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Switch Back) 철도가 개설되면서 승객들이 걸어다니는 풍경도 사라졌다. 스위치백은 수능시험 문제로도 출제되면서 전국적 명소가 되었으나, 2009년 터널 개통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모빌리티는 단순히 장소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변형하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기도 한다. 인클라인 철도와 스위치백 철도의 기억을 계승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테마파크인 추추파크가 조성되었다. 흥전역-나한정역 사이의 옛 스위치백 구간에서는 ‘스위치백트레인’이라는 증기기관차형 관광열차가 운행되며, 도계 삭도마을을 종점으로 삼고 있다.

흥전갱에서 생산된 탄을 도계역까지 운반하던 가공삭도. 사진=대한석탄공사

■삭도, 하늘을 가로지르는 석탄 바구니

케이블카처럼 공중을 가로지르던 가공삭도(架空索道)는 탄광촌의 대표적 풍경이었다. 1940년 도계광업소의 흥전갱-도계역 저탄장 2.3㎞ 구간에 설치된 공중 모빌리티는 1991년까지 51년간 운행되었다. 산과 산을 잇는 철선 위로, 0.5톤의 석탄을 실은 34개의 바구니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늘을 나는 솔개를 연상시켜 탄광촌 사람들은 삭도를 ‘소리개차’라고도 불렀다.

도계저탄장으로 향하는 삭도 바구니가 ㄱ자 형태의 내리막길에서 종종 전복되어 석탄이 쏟아지는 일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석탄이 떨어지면 동네 사람들이 대야를 들고 달려가 주워 담았다. 나중에는 삭도 아래에 보호철망을 설치했지만, 석탄 낙하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도계 주민들은 철길에서도 석탄을 주워 생활에 보탰다. 도계역에서 마교리와 흥전리 구간의 철길 에는 낡은 탄차가 흘리고 간 석탄이 많았다. 주부와 아이들은 철길의 석탄을 모아 주먹탄을 만들거나 연탄을 찍었다. 도계 가정집에 수타식 연탄 제조기가 많았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태백 장성지역에도 1940년대 금천갱-장성전차갱 입구 구간에 삭도가 설치되었고, 강릉 강동면에도 삭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영월광업소에서 영월화력발전소까지 12㎞에 걸쳐 설치된 삭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삭도를 기록한다. 현재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3.23㎞인데, 영월의 삭도는 이보다 4배 가까이 길었다. 영월 삭도 철탑 앞에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기도 했다.

■선탄장의 여자 광부, 광부엄마

막장에서 채굴한 석탄은 선탄장을 거쳐 저탄장으로 이동하고, 선탄부가 골라낸 잡석은 폐석장으로 운반된다.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선탄장은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라 채탄-운반-저탄 과정을 완결하는 탄광 모빌리티 시스템의 핵심 허브였다. 선탄 과정에서 탄의 품질이 결정되므로 선탄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선탄장에서 일하는 광부는 모두 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탄부를 여자 광부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강원일보에서는 ‘광부엄마’라는 가슴 찡한 애칭을 붙여 선탄부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선탄부는 컨베이어 벨트를 빠르게 지나가는 석탄 더미에서 돌덩이나 나무토막을 골라내는 고된 노동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삶 자체에 있었다. 태백·삼척·정선지역 선탄부의 대부분은 남편을 탄광 사고로 잃고 자녀 생계를 위해 ‘남편을 잡아먹은 바로 그 탄광’으로 스스로 들어간 한을 지니고 있었다. 광업소에서는 순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두었는데, 이는 유족보상금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탄장에서 일하는 선탄부들에게 석탄을 고르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픔을 안고, 컨베이어 벨트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삶의 투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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