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강릉 가뭄이 남긴 경고

전계원 강원대학교 방재전문대학원 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회장

◇전계원 강원대학교 방재전문대학원 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회장

강릉시를 비롯한 강원 영동지역은 지금 물 한 방울이 절실한 재난의 중심에 있다. 올해 9월까지 누적 강수량은 평년 대비 30% 수준에 불과하고, 주요 상수원의 저수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지 일시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매년 반복되고, 갈수록 장기화되는 ‘일상 속 재난’으로서의 가뭄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재난(silent disaster)이 아니다.

생존의 조건이 위협받는 지금, 가뭄은 그 자체로 복합적 사회재난이라 말할 수 있다. 재난 대응의 본질은 피해의 회피가 아닌, 예방 가능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 강릉시의 상황은 단지 비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측과 준비, 제도와 기술의 부재가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강릉을 포함한 강원 영동권은 태백산맥 동쪽의 지형 특성상 강수가 집중되면 곧바로 바다로 유출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소규모 계곡수와 지하수에 의존하는 지역 특성상 댐이나 대형저수지에 비해 저장력이 부족하고, 고지대 주거지가 많아 급수 사각지대도 넓다. 이런 상황에서 가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반복되는 위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대응은 급수차, 생수 배급, 소방차 지원 등 단기 응급조치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가뭄을 단순히 비가오지 않아서 물이 부족한 자연재난이라는 생각에서 관리 가능한 ‘사회재난’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가뭄도 태풍이나 홍수처럼 과학적 예측과 행정적 준비, 기술적 대응, 시민의 참여가 통합되어야만 관리될 수 있는 복합재난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현장에서 수재해와 재난관리를 연구하고 정책을 조언해 온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전략이 실질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AI 기반 가뭄 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토양 수분, 기온, 강우 예측, 수위 데이터를 통합해 ‘지역 위험지수’를 산출하고, 단계별로 급수계획과 행동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마을 단위의 예경보시스템을 통해 주민에게 알림을 보내고, 위기 상황에 대비한 준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지형 기반의 분산형 수자원 저장시설이 필요하다. 빗물저장조, 계류댐, 생태저류지 등 소규모 저장시설을 고지대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구축해 비상시 생활·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기적 응급 대응을 넘어서, 기후 적응형 인프라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셋째, 광역 수자원 통합관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강릉댐, 도암댐, 오봉저수지 등 주요 수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유수 전환, 권역 간 급수 분담, 재배분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 단위의 통합 물관리 매뉴얼과 기관 간 협조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넷째, 주민참여형 물관리 거버넌스가 운영되어야 한다. 물 부족은 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민, 농업인, 전문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가뭄 단계별 행동매뉴얼, 절수 캠페인, 분배 원칙 등을 공동 설계하고 실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강릉의 가뭄은 단지 비가 오지 않아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는 기후변화, 지형 한계, 기술 격차, 정책 부재가 복합적으로 얽힌 ‘시스템 재난(systemic disaster)’이다. 이제는 가뭄을 재난관리 체계에 명확히 포함시키고, 예측-저장-분배-대응이 통합된 과학기반 시스템 전략을 기반으로 대응해야 한다. ‘비가 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강원도의 지역별 수문 구조를 고려해 산악지형 맞춤형 재해관리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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