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지역의 극심한 가뭄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불구,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지원이 부족해 강원특별자치도와 강릉시를 비롯한 도내 시·군이 예산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는 올 8월30일 행정안전부가 강릉 가뭄에 대해 재난사태를 선포하며 ‘범정부적 대응’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난사태 선포에도 정작 가뭄 대처에 소요되는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자체 예비비로 감당하는 현실은 ‘재난관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현재 강릉시와 강원특별자치도는 9월에만 가뭄 대응을 위해 5억원 이상을 집행했고, 각 시·군 또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예산을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릉 급수지원에 동참하고 있는 타 시·도 및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 역시 대부분 자체 예산을 쓰는 실정이다. 이 같은 구조는 정부가 ‘재난사태’라는 명분만 앞세운 채, 실제 필요한 재정 투입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문제의 근본은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재난사태 선포 이후 국비 투입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나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선포만 있을 뿐, 그에 걸맞은 예산 집행 근거가 부재하니 중앙정부는 형식적인 개입에 머무르고, 지방정부와 유관 기관은 실재적인 대응 비용을 감당하게 되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재난 대응의 책임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사실상 전가하는 구조이며, 제도의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더욱이 정부는 지금까지 강릉 가뭄 대응에 총 얼마의 예산이 쓰였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범정부가뭄대응현장지원반조차 관련 예산 총액에 대해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피해 주민들의 고통은 늘어나고 있으나, 정부는 책임 있는 대응을 위한 예산 집행조차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강릉의 가뭄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기후재난 대응 역량을 시험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재난관리기금 및 특별회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면 조속히 보완하고, 정부가 재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정부가 먼저 예산을 우선 투입한 뒤 이후의 회계 정산이나 제도적 보완을 병행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재난사태’라는 행정 용어가 단지 정치적 수사의 장식이 되지 않도록 현실적인 지원과 대응이 동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