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 낙엽을 밟으며

우승순 수필가

가을이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 가는 단풍과 풀벌레 소리, 달빛마저도 색다른 톤이다. 매년 오는 가을이지만 해마다 새롭다. 가을 오케스트라의 총 지휘자는 언제나 높고 파란 하늘이다. 초저녁잠에서 깨어 은은한 달빛에 마음이라도 닿으면 속절없이 뒤척인다. 생각이 깊어지고 오감(五感)이 곤두서는 가을이다.

가을은 느낌으로 먼저 온다. 거실로 들어오는 햇빛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고 창문 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시원해 보이던 강물이 서늘하게 느껴지고 달빛도 투명하고 차가워진다. 아침저녁으로 맞닿는 냉기에 정신이 맑아지고 볼을 스치는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가을은 입맛도 돋운다. 수박보다는 포도에 손이 가고 토실토실한 알밤이 제철이다. 새벽시장엔 송이, 능이, 싸리버섯이 깊은 산속의 풍미를 전해주고, 들녘엔 볕에 그을린 참깨와 들깨 더미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햇곡식이 선들선들 구수하게 익어 가는 가을엔 커피 향도 더욱 그윽해진다.

가을은 소리와 함께 깊어 간다. 봄부터 울던 앞산의 뻐꾸기는 온데 간 데 없고 꿩 소리가 “꿔궝꿩” 우렁차다. 여름 한량인 매미가 무대 뒤로 사라지고 가을 전령인 귀뚜라미와 풀벌레의 합창이 요란하다. “솨아 솨아”불던 숲의 여름 바람도 “바스락 바스락” 갈바람으로 음색을 바꾼다.

가을은 단풍의 시간이다. 여름 내내 수고롭던 잎이 가슴 깊숙이 묻어 두었던 내면의 언어들을 형형색색으로 토해낸다. 아카시나무, 싸리나무, 생강나무는 노란 연정으로, 단풍나무와 붉나무는 붉디붉은 열정으로, 갈참나무와 굴참나무는 갈빛 사연으로 은퇴 작품을 완성한다. 저녁노을처럼 빛난다. 모든 잎이 한 가지 색으로만 물든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인생도 그럴 수 있겠다.

때로 유명 관광지에 단풍 구경을 갔다가 주차난과 인파에 휩쓸려 보는 둥 마는 둥 돌아와서, 아파트 정원이나 뒷산에서 곱게 물든 단풍을 보며 탄식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늘 곁에 있지만 무관심할 때가 많다.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쌉싸래한 숲 냄새가 구수한 타닌(tannin) 냄새로 바뀌면 빛바랜 잎들이 떠날 시간이다. 이른 봄, 그 뽀얗고 탱탱했던 피부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집착을 내려놓고 바람과 중력에 몸을 맡긴 채 홀가분하게 떠날 시간이다. 그 짧은 비행의 순간에 낙엽은 무슨 생각을 할까? 두려움일까? 자유일까? 가을 하늘은 푸르고 공활하다.

잎이 떠나면 빽빽하던 숲도 헐렁해진다. 휑한 공간으로 바람이라도 불면 앙상한 나뭇가지는 살갑고 수고롭던 잎이 그립다. “있을 때 잘해 줄 걸!” 여름 내내 땡볕과 비바람을 견디며 혼신의 힘을 다했던 나뭇잎이 아니던가. “낙엽을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는 레미 드 구르몽의 표현이 참 멋지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낙엽을 밟으면 왠지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곱게 물들었던 한때의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려놓음에 대한 감정이입이 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후루룩 떨어지는 낙엽은 욕망과 번뇌와 존재로부터의 자유다. 나무는 가장 화려하게 물들 때 놓아 버리지만, 인생은 내려놓을 때 아름답게 물들지 않을까. 이 가을 고즈넉이 산책을 나서보자. 낙엽을 밟으며 나를 곱게 물들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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