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유의 입담과 인품으로 개그계에서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 '개그계 대부'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전유성은 폐기흉 증세가 악화하면서 이날 오후 9시 5분께 세상을 떠났다.
1949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뒤 배우를 꿈꿨다.
탤런트 시험에서 4번 연달아 낙방한 뒤 TV에 출연하는 직업을 찾다가 코미디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인기 MC 겸 코미디언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을 막무가내로 찾아가 방송 원고를 써주는 일종의 희극 작가로 출발했고, 1969년 TBC '쑈쑈쑈'의 작가로 방송가에 본격 발을 들였다.
코미디언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에 출연하면서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슬랩스틱 코미디같이 몸으로 웃기기보다는 곱씹어 생각하면 피식 웃게 만드는 특유의 촌철살인 개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과거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외모 비하하는 개그를 나는 정말 못하게 한다"며 따뜻한 유머를 강조하고선 "뭐든지 웃기는 프로그램이면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전유성은 '개그맨'이라는 새 용어를 대한민국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익살을 뜻하는 영어 단어 '개그(gag)'와 남자를 뜻하는 '맨(man)'을 합친 것으로,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개그맨 창시자', '대한민국 1호 개그맨'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전유성은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의 창립 멤버로, 1천회를 맞았을 때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전유성은 느릿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언변으로 온 국민을 웃기고, 후배 개그맨들을 잘 챙기는 수많은 희극인 후배의 존경을 받는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코미디 시장'이라는 코미디 극단을 운영하며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박휘순, 신봉선, 김민경 등의 후배 개그맨들을 다수 발굴했다.
많은 아이디어로 개그맨들의 코미디에 조언해주고, 코너의 틀까지 잡아주며 후배들을 이끌어줬다. 자기 집에 있던 골동품까지 팔면서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모여든 지망생들을 양성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전유성은 생전에 "개그맨들은 군기가 세다는 말이 있는데 난 그 말이 되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한다"며 "군기는 군대에서만 세면 되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예원예술대, 한국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신영, 조세호 등을 제자로 길러냈다.
이 때문에 2019년 전유성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진행된 전국 투어 공연 '데뷔 50년 만에 제일 큰 무대-전유성의 쑈쑈쑈'에는 수많은 후배가 모여들었다.
김학래, 최양락, 김지선, 이영자, 김미화, 이홍렬, 주병진, 조혜련, 김한국, 김효진, 심형래, 임하룡 등이 출연했고 권인하, 노사연, 박중훈, 양희은, 전영록, 전인권, 강원래 등 동료 배우와 가수들도 나섰다.

전유성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 동료들은 일제히 고인을 추모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어제 병원에서 보고 온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유머에 애드리브를 하듯이 말도 바로바로 주고받았다. '먼저 가 있을 테니 가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고인에 대해 "한국 코미디의 인적 자원을 업그레이드하고, 유망한 후배들을 이끌면서 코미디의 위상을 높인 분"이라며 "코미디 하면 유랑극단만 생각하던 때에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코미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회상했다.
후배 개그맨 엄영수는 이날 "전유성이 교육을 해 개그맨이 된 후배들이 40명이 넘는다. 항상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돼 줬다"며 "저 또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몇 번 하차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전유성이 그때마다 PD들에게 '엄영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 함부로 내치면 안 된다'고 방패막이가 돼 줬다"고 말했다.
또 "제가 최근 '연예비사,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냈는데 전유성이 지난 7월 병원에서 입원한 채로 책 서평을 써 줬다. 생전 마지막으로 글을 써 준 것"이라며 "사력을 다해 글을 써 줄 정도로 후배 사랑이 지극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전국의 많은 축제와 지방 행사 가운데 전유성이 만들어 놓은 게 많다.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점심값 정도 되는 돈만 받고서 컨설팅을 해줬다"며 "코미디 아카데미를 세워서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코미디언이 될 길을 열어줘서 지방 코미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코미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코미디에 몸을 불사른 분이었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조영남은 별세 소식에 믿기지 않는 듯 "확실한 뉴스냐?"고 되물으며 허탈해했다.
조영남은 "코미디언 중에서 그렇게 선량한 친구가 없다. 짬뽕을 파는 중국집을 운영하며 자기도 사정이 여의찮은데도 TV에 나가지 못하는 후배 코미디언들을 모여 연습시켰다"고 기억했다.
그는 "전유성이 위독했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도 야위어서 찾아오길래 그때 가는 건가 하고 크게 걱정했는데, 살아났다"며 "몇 달 전에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조의금을 미리 보내뒀다"고 말했다.
가수 남궁옥분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8월 28일 오빠(전유성) 딸 제비가 운영하는 남원 인월의 카페에 오빠 뵈러 가서 마지막 뵙고 왔는데 이리 빨리 가실 줄은 몰랐다"며 "어제도 전대 병원 응급 상황에서도 근력 운동 하시라는 카카오톡에 밤 9시 4분에 '응'이라는 답을 주신 뒤 하루 만인 오늘 밤 9시 5분에 가셨다. 연명치료도 거부하시고 따님 제비와 얘기도 많이 나누시고 전유성답게 떠나셨다"고 적었다.
남궁옥분은 "세상 돌아가는 걸 휴대전화로 모두 살피며 SNS도 모두 보시고 책을 끝까지 손에서 멀리하지 않으신 귀한 사람"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개그맨 김대범도 SNS를 통해 "저의 스승이신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 선생님께서 하늘의 별이 되셨다. 불과 오늘 낮에 건강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은 안 됐다"며 "나이를 떠나 항상 젊은 감각의 신선한 개그를 하셔서 늘 감탄하며 배울 수 있었다"고 애통해했다.
그는 "스승님처럼 나이를 먹어 가고 싶었다. 그럴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스승님의 성함처럼 하늘에서 유성으로 계속 빛나며 여행하시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한편 고인의 유족으로는 딸 제비 씨가 있으며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뤄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