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다시 제 역할을 잃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말싸움과 분풀이의 전장으로 변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가 연일 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욕설이 터지고, 위원장은 의사봉이 아닌 확성기를 쥔 듯 목청을 높인다. 본래 국감이란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감시하기 위한 헌정의 의식(儀式)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감은 오히려 권력의 거울이 아니라, 권력자의 자아가 반사되는 욕망의 무대가 되어버렸다.
“군자는 말에 조심하고, 행동에 신중하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논어의 구절이다. 그러나 요즘 국감장의 군자들은 입이 먼저 달린다. “윤석열 꼬붕”, “지X”, “셧 더 마우스” 같은 단어가 국회 속기록에 남는다니, 이는 역사에 남을 수치다. 권위는 소리의 크기에서 생기지 않는다. 논리의 단단함과 품격의 절제에서 생겨난다. 그럼에도 여야는 서로를 향해 언어의 칼날을 휘두르며 ‘승부’ 아닌 ‘보복’을 벌인다. 마치 진시황이 서책을 불태우듯, 국회의원들이 국감의 의미를 스스로 태워 없애고 있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파행이 단발적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사위, 과방위, 산자위, 국방위… 파행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공공의 책임보다 사적 감정이 앞선다. 여당은 “내란 청산”을 외치며 적폐를 몰아붙이고, 야당은 “김현지 출석”을 고집하며 정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국감행태는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의사규칙의 무력화는 상시화됐다. 발언 시간은 지켜지지 않고, 의사진행발언은 본질심사를 잠식한다. 회의 운영의 중립을 보증해야 할 위원장의 권한은 ‘편파 진행’ 논란 속에서 소진된다. 강경 발언은 당내 지지 결집과 공천 경쟁에서 즉각적 ‘성과’를 준다. 방대한 감사자료를 분석해 팩트로 승부하기보다, 프레임 선점에 올인하는 쪽이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정쟁이 정치의 본질은 아니다. ‘정치(政治)’란 본래 ‘다스릴 정치’다. 그러나 요즘 정치의 언어에는 다스림이 없고, 오직 흩어짐만 있다. 여야가 고성을 주고받을 때, 국민의 신뢰는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냉소뿐이다.
국감장은 이제 ‘국정 감사’가 아니라 ‘감정 방출’의 장으로 변했다. 의원들의 언어는 국민을 향하지 않는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카메라를 향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말의 품격’이 무너진 자리에 남는 건 오직 소음이다. 소크라테스는 “말이란 영혼의 거울”이라 했다. 지금 국회의 언어는 우리 정치의 영혼이 얼마나 피폐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여야 할것 없이 지지층만 의식하니 국민눈에는 꼴불견이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젊은 유튜버 쯔양이 놀란 눈으로 의원들의 욕설을 바라보던 장면은, 국민 모두의 표정이었다. 국감이 국민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자존심 싸움터로 전락했음을 웅변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국감 무용론이 커질 것은 불 보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광장은 ‘아고라’라 불렸다. 그곳은 논쟁의 공간이면서도,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이성의 무대였다. 지금 우리의 국회는 그 아고라의 정신을 잃었다. 고함이 논리를 대신하고, 욕설이 설득을 대체한다. 정치가 이성을 잃으면, 민주주의는 방향을 잃는다. 이재명 정부 첫 국감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국감 성과지표를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이 소리쳤는가’가 아니라, ‘몇 건의 제도 개선 권고가 실행되었는가’, ‘국감 후 6개월 내 이행률은 몇 %인가’로 의원과 기관을 평가하면, 말의 무게가 실적의 무게가 된다. 권력은 말의 무게에서 태어나고, 말의 경박함에서 무너진다. 여야가 지금처럼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면, 국감은 결국 국민의 분노로 종결된다. 이제 국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을 향한 목청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監査)’의 시작이다. 국민은 언제까지 이런 저질 국정감사를 지켜봐야 하나.가뜩이나 경제엔 먹구름이 가득한 대한민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