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볏짚 품귀 현상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가을이 길게 젖어 있다. 하늘이 멈춘 듯 비를 떨구는 사이 논바닥은 늪이 되었고, 들녘은 숨을 잃었다. 농부의 눈빛은 허공만 맴돈다. 볏짚이 말라야 겨울을 날 짚단이 생기는데, 올가을엔 그 짚단이 사라졌다. 젖은 볏짚은 썩거나 곰팡이가 슬어 소 먹이로도 쓰지 못한다. 곡식은 추수를 못 하고, 가축은 먹이를 구걸한다. ‘하늘이 돕는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곤포(250㎏) 기준 볏짚 가격은 2023년 6만7,000원에서 올해 10월 8만원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소 50마리 이상을 키우는 전업농가 수가 한육우 1,519곳, 한우 1,508곳, 젖소 152곳 등에 달해 사료 부족에 따른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농부의 손끝에서 시작된 생명은 하늘과 땅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요즘 그 하늘이 심술이 났다. 강원도 영동에서는 스무 날이 넘게 비가 내렸다니, 이쯤 되면 장마가 아니라 상처다. “소가 풀을 먹어야 우유가 나오고 고기가 된다”는 이치가 경제의 덫에 걸렸다. 하늘이 내린 비가 이토록 비싸게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옛사람들은 “수즉다(水則多)”라 했다. 물이 많으면 풍요롭다. 하지만 지금의 물은 넘쳐흘러 생명을 잠식한다. 축산농가의 빚은 쌓이고, 고깃값은 오르며, 소비자는 장바구니 앞에서 멈칫한다. 농민의 고통이 도시의 물가로 전이되는 것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그러나 기다림도 때가 있다. 하늘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많은 삶이 그 비에 잠겨 있다. 볏짚 품귀는 단순한 사료난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농업의 기초체력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는 신호다. 이제는 ‘기후 이상’이 아니라 ‘기후 상시’의 시대다. 하늘에 대응하는 기술과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흉년에도 짚단을 쌓아 겨울을 대비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예비의 지혜’일 것이다. 하늘은 늘 변하지만, 땅은 우리 책임 아래 있다. 젖은 볏짚을 바라보며 우리 농업의 근본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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