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혁신을 만나는 곳(Wo Geschichte auf Innovation trifft).”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헤르텐시가 에발트 탄광(Zeche Ewald) 재생 프로젝트에 내건 표어다. 한 세기 넘게 루르지역의 산업화를 떠받치던 탄광은 2000년 폐광과 함께 지반침하와 환경오염, 실업이라는 지역의 상처를 남겼다. 철거와 보존을 두고 논쟁이 이어졌지만, 헤르텐은 산업유산 위에 미래를 쌓는 길을 선택했다. 오래된 갱도와 작업동은 문화·여가 공간으로, 북측 부지는 수소·재생에너지 기업이 모이는 기술 클러스터로 탈바꿈했다. 에발트는 ‘재생’이라는 선택을 결과물로 증명해내고 있다.
■철거 위기에서 ‘미래형 단지’로… 에발트는 어떻게 되살아났나=1871년 문을 연 에발트 탄광(Zeche Ewald)은 한때 루르(Ruhr)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핵심 거점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석탄산업의 급격한 쇠퇴와 함께 지반침하, 시설 노후화, 토지 오염 문제가 덮쳤다. 호황을 이끌었던 광산 부지가 지역 개발의 걸림돌로 지적됐으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철거만이 답’이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한다.
변화의 조짐은 폐광을 맞이한 2000년보다 앞선 1999년 찾아왔다. 헤르텐시와 RAG 몬탄 부동산이 ‘프로젝트 에발트(Ewald 1/2/7)’를 출범시키며 산업유산 보존과 기능 재배치를 골자로 한 장기 도시전략을 세운 것이다.
재생 계획은 52㏊에 이르는 부지를 쓰임새에 따라 새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석탄 찌꺼기가 쌓여 형성된 슬래그힙 ‘호헤바르트(Hoheward)’는 산책과 사이클링이 가능한 대규모 녹지·레저 공간으로 꾸몄다. 옛 갱도와 작업동 일대는 전시·공연·식음 시설이 어우러진 문화·관광 구역으로 변모했다. 단지 외곽부에는 수소·재생에너지·디지털 분야의 기업들을 모아 산업·기술파크를 조성했다.
초라한 폐광지로 여겨졌던 에발트 단지는 이제 시민의 일상과 미래 산업이 함께 숨 쉬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유럽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슬래그힙이 ‘도시의 공원’으로…환경·경관 재생의 현장을 찾다=에발트 단지 북쪽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인공 언덕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탄광에서 나온 폐석과 석탄 찌꺼기가 쌓여 형성된 슬래그힙 ‘호헤바르트’다. 수년간의 복원 사업을 거쳐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이곳은 너르게 펼쳐진 잔디와 들판이 초록빛 수평선을 이루며 도심 속 힐링을 선사했다.
산책로를 따라가자 조깅하는 시민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바람을 타고 이륙을 준비하는 패러글라이더가 연이어 눈에 띄었다. 언덕 정상부에서는 이곳의 랜드마크인 호라이즌 천문대(Horizon Observatory)와 해·달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태양시계(Sonnenuhr)를 마주했다.
호헤바르트 전역에서는 세그웨이 투어, 전기자전거 라이딩, 전동스쿠터 체험, 폐석 더미 오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정상에 오르면 도시·산업시설·숲이 하나의 시야로 이어지는 ‘경관축(landscape axis)’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2001년 루르지방협회(RVR)와 국제 설계팀은 폐석 언덕을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며 호헤바르트 재생에 나섰다. 특히 천문학적 요소를 더해 하늘·빛·시간·지형을 읽을 수 있는 장소로 재해석한 점이 특징이다.
호헤바르트 방문자센터 직원 나타샤(Natascha·28)씨는 “호헤바르트는 산책과 자전거,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라며 “도시 풍경을 즐기기 위해 찾는 방문객도 많다. 해가 길어지는 계절에는 야외 행사가 늘어 공원이 더욱 활기를 띤다”고 전했다.
■거대한 갱도 기계가 레스토랑 한가운데… ‘산업유산의 일상화’=에발트 단지 중앙부에는 탄광의 옛 작업동을 개조한 레스토랑 ‘Moto59 Foodgarage’가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철제 케이블과 도르래, 광부들을 오르내리던 수직갱도 ‘샤프트 7(Schacht 7)’의 권양 설비가 위용을 드러냈다. 거칠게 마모된 금속 표면에는 긴 세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문객들은 산업유산을 곁에 두고 식사를 즐기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Moto59 Foodgarage는 탄광의 흔적을 살린 채 바이크·자동차 문화를 더한 독특한 콘셉트의 레스토랑이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클래식카와 오토바이 동호회가 열린다. 때때로 공연이나 애프터워크 DJ 파티도 열려 루르지역의 ‘만남의 광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토마스 블락(Thomas Block·68) Moto59 Foodgarage 대표는 “탄광의 흔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에발트 재생의 핵심”이라며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과거의 온기를 느끼고, 현재의 활기를 함께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탄광에서 수소단지로…산업 전환 기반 마련=에발트 단지 북쪽에는 수소·재생에너지 기업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 ‘H2Herten’이 자리한다. HyCon, ITM Power, Naturwerk Windenergie, Turbonik, Procore 등 20여개 기술기업이 입주해 수소 생산·저장, 공정기술, 에너지 인증 등 다양한 연구·실증을 수행하고 있다. 연료전지 개발부터 풍력기술,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미래 에너지 분야 기업들이 연계된 ‘산업 클러스터’를 이룬 셈이다.
에발트의 전환 전략은 산업유산 보존과 신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헤르텐시와 RAG 몬탄 부동산은 폐광 직후 단지 정비와 기업 유치를 병행하며 수소·디지털 분야를 미래 핵심 산업으로 설정했다. 기존 탄광 건물은 사무·연구시설로 리모델링했고, 북측 부지는 산업용 전력과 물류 접근성을 강화한 기술기업 전용 공간으로 재편했다.
기업 입주가 잇따르면서 에발트 단지에서는 1,500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다. 수소·재생에너지 기업이 모여든 ‘그린테크 클러스터’가 구축되며 지역 산업 구조 전환의 기반도 마련했다. 산업유산을 허물지 않고 기술·혁신 기반을 쌓아 올린 에발트의 재생 전략은 폐광도시의 구조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