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실업급여의 신호

◇일러스트=조남원기

춘천고용복지플러스센터 문이 열리자마자 번호표 기계는 먼저 숨이 찬다. 실업급여 창구 순번은 두 시간 만에 80번을 넘긴다. 당장 밥벌이를 걱정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 줄로 늘어선다. 실업급여는 통계로는 ‘지급 건수’지만, 창구 앞에서는 겨울을 견디는 최소한의 난로다. 민심이 얼어붙을 때는 믿음을 바탕으로 곡식보다 먼저 줄 것이 ‘일’이라고 했다. ▼문경지교(刎頸之交).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를 이르는 말이다. 즉,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깊은 우정과 의리를 표현한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 경명과 친구 낙장 사이의 생사를 함께하는 절친한 우정에서 유래한 말로, 지금까지도 진정한 우정의 상징이다. 문경지교의 신의도 결국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약속이었다. 약속이 끊기면 신의는 미담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강원의 고용시장은 그런 단절 위에 서 있다. 제조도 건설도 빈약한 땅에서 일은 계절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강원지역 실업급여 수령 건수는 2023년 24만2,518건, 2024년 24만6,084건, 2025년(1~11월 집계) 22만5,101건으로 최근 3년 연속 20만건대를 웃돌고 있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이 부족한 도내 산업환경 특성상 일부 노동자들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해 강원지역 실직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 해 연속 20만건을 넘긴 지급 수치는 위기의 크기를 말하지만, 받지 못한 사람의 몫은 말하지 않는다. 정육점에서 일하던 60대의 끝난 계약, 현장에서 내려온 20대의 기다림은 서로 다른 얼굴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땅에서 일은 왜 이렇게 짧고, 기다림은 왜 이렇게 긴가. ▼실업급여 창구는 구휼이 아니라 신호다. 한겨울에 새들이 남쪽으로 몰리는 것처럼 숫자는 방향을 가리킨다. 정책의 말보다 현장의 숨결이 먼저 읽혀야 한다. 난로를 더 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바람을 막는 일이 더 급하다. 줄을 선 사람들의 등 뒤에서 이 지역의 내일이 조용히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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