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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책의 물결, 춘천 산책(冊)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봄이 오는 길목, 의암호의 잔잔한 물결이 예사롭지 않다. 겨우내 움츠렸던 호반의 도시 춘천이 이제 ‘책의 도시’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시민들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 23일 상상마당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책의 도시’ 선포식은 단순히 일회성 행사를 넘어, 춘천의 정신적 지형을 새롭게 그리겠다는 다짐의 자리였다. ▼춘천은 본래 ‘글의 고장’이다. 김유정의 문학적 자양분이 흐르고, 수많은 예술가가 호수와 산을 벗 삼아 영감을 얻던 곳이다. 그런 춘천이 올해 대한민국 독서대전의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독서는 조용한 책상 위를 벗어나 아이의 호기심과 어르신의 지혜가 만나는 ‘일상의 문화’가 돼야 하지 않을까. 이번 선포식의 슬로건인 ‘책의 물결, 춘천 산책(冊)’에는 이러한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산책(散策)의 ‘책’을 ‘글 책(冊)’으로 치환한 이 절묘한 표현은 춘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장소성을 극대화한다. ▼방송인 김영철씨가 홍보대사로 위촉돼 특유의 유쾌함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기로 한 점도 고무적이다. 딱딱하고 엄숙한 독서가 아니라, 누구나 즐겁게 동참할 수 있는 ‘놀이’로서의 독서 문화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책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빛을 발하려면 독서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지역의 서점과 출판사가 주인공이 되어 거대 플랫폼에 밀려 고전하는 동네 서점들이 살아나고, 춘천만의 색깔을 담은 콘텐츠가 생산될 때 비로소 독서 생태계는 건강해진다. 또한, 연중 이어질 강연과 전시, 토론 프로그램이 관(官) 주도의 일방향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거버넌스’의 모범이 돼야 시너지를 낸다. ▼춘천이 진정으로 ‘책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호숫가 벤치에 앉는 것, 그 소박한 시작이 춘천을 위대한 인문의 도시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6년, 춘천은 이제 책과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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