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프리즘]아르테미스 2호와 석기시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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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완 정치평론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예고된 현지 시각은 지난 1일 밤 9시였다. 숨죽여 외신 화면을 지켜보다 맥이 탁 풀려버렸다. 어리석게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종전 선언이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과연 트럼프다웠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란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는 엉뚱하게도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의 발사 성공 소식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불쑥 치밀었다. 자신이 시작한 명분 없는 전쟁 탓에 지구촌 전체가 혼란에 빠졌는데 한가하게 달이라니. 그의 인식은 지구에서 38만4,400킬로미터 떨어진 달과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달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지 모르겠다. 아폴로 17호 이후 56년 만에 인류가 달 탐사 여정에 나섰으니 대단한 사건 아닌가. 더구나 발사에 성공한 건 연설 시작 두어 시간 전이니 축하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평소였다면 로켓이 지면을 박차며 솟구치는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며 감동에 홀로 눈물을 찔끔거렸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트럼프는 달을 향한 인류의 위대한 도전마저 자신의 치적 홍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연설 내내 트럼프는 이란을 겨냥한 장엄한 분노 작전이 정당했으며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반복해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인 자신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는 일종의 정신 승리였다. 아르테미스 2호 발사 성공 소식은 자칭 전쟁 영웅의 이마에 얹어진 꽃장식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어진 문제적 발언이었다. “석기 시대로 돌려보낼 것이다.” 이란이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을 경우, 모든 석유 시설과 발전소를 공격해 생존이 불가능한 땅으로 만들겠다는 섬뜩한 경고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모두 파괴하겠다는 위협, 이 앞에서 그 어떤 수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트럼프는 달 탐사선 발사라는 눈부신 과학적 성과와 함께 석기 시대의 공존을 예고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이 연출한 이 현대판 부조리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반세기 전인 1981년 펴낸 <불복종에 관하여>에서 오늘을 예언하듯 말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가 어느 때보다 가까이 온 순간에, 인류는 석기 시대의 정신과 맹목적인 무지로 역사의 비극적 종말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80년대 핵전쟁을 준비하는 광기 속에서 인류의 존속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프롬은 그 흐름에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류 문명은 불복종의 역사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불복종으로 인류가 시작되었고,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건넸기에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12·3 비상계엄, 그 겨울에도 명령에 불복종한 광장의 시민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암흑에서 탈출했다. 양심과 신념의 이름으로 권력자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인류는 진화할 수 있었다.

인류가 힘과 권력에 복종한다면 스스로 ‘절멸의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우울한 예언을 거부하려면, 단호한 ‘아니오’의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미국 전역에 번지고 있는 ‘노 킹스(No Kings)’, 트럼프는 왕이 아니라고 외치는 시위처럼, 세계 곳곳에서 ‘아니요’라는 문제 제기가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아름다운 달이 떠오르고 있고, 우리는 바로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주 항해를 시작한 아르테미스 2호의 사령관은 말했다. 허망한 석기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아름다운 달을 보며 소원하는 밤. 꽃비가 내리는 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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