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이 연일 문전성시라는 소식이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 한 편이 불러 온 현상이다. 비운의 왕 단종이 1457년 6월 21일 삼촌인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되고 이튿날 영월로 유배당한 뒤 같은 해 10월 21일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의 삶을 씨줄로 하고, 이와 관련 인물들의 모습을 날줄로 엮은 영화이다.
단종의 유배와 죽음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 소재를 위트와 해학이 곁들여 맛깔나게 버무려 낸 솜씨가 관객들에게 어필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기세가 등등한 OTT의 파고 속에서 파리만 날리던 영화관으로 1,6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아 역대 국산영화 흥행 탑까지 넘보고 있다니 확실히 의외이다. 배경은 무엇일까?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아무리 픽션이 가미됐더라도 기본적으로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관련된 역사적 장소가 있다. 이 두 요소, 그러니까 영화가 끝난 뒤 그 일이 실제로는 어땠는지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스며 있는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발굴일 터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저절로 발굴되는가? 아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번역이다. 우리의 역사는 99%가 한문으로 쓰여 있다. 역사문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이유이다. 다행히 이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국고전번역원과 권역별 국학기관들이 있어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이 문제를 조만간 획기적으로 해결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역사 문헌의 지속적인 발굴이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민간에 흩어져 있는 문헌들이다. 이들 문헌은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민간 소장이라는 이유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국학진흥사업에 권역별 국학기관들이 참가하여 해당 권역의 문헌들을 조사 수집 정리하고 있지만 역시 가야 할 길은 멀다.
이번 영화의 중심 배역 중 하나인 충의공 엄흥도에 관한 기록이 집성된 ‘충의공엄선생실기’를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2021년에 완역하여 보급한 바 있다. ‘실기(實記)’란 특정 역사인물의 생애와 행적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놓은 문헌을 말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엄흥도의 사적과 후대의 추숭 과정 등, 그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다. 가히 기록으로 전해오는 ‘엄홍도의 모든 것’임 셈이다. 여기를 보면, 단종이 죽은 후 “조정에서 시신을 강에 던지라고 명하니 옥체가 물에 둥둥 떠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배리(陪吏, 엄흥도)의 집에 옻칠한 관이 있었는데 애초에 노모를 위해 마련해 둔 것이었다. 이에 잠수하여 옥체를 건져내서 염습하고 장사를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과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이것이 기록유산의 힘이다. 인간은 기록을 통해 ‘문화’를 전승해 왔다, 이런 점에서 호모 아키비스트(Homo Archivist, 기록하고 보존하는 인간)로서의 정체성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핵심적인 특성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은 우리 역사 속 이야기들이 콘텐츠적 상상력과 성공적으로 결합할 때 어떤 문화적 신드롬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또 한번 여실히 보여준다. K-컬처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가운 상황 속에서 영월의 문전성시가 지역 기록유산 발굴과 정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