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 좋고, 경치 좋고, 서울과 접근성 좋고
… 주민의 약 30%가 귀농·귀촌”
△지찬주(51) 사암2리 이장=활력 있고 외지인이 귀농·귀촌하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 싶어. 돈 많이 벌어서 우리마을 가가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하는게 내 목표야. 우리 마을처럼 사업을 많이하는 마을도 없을거야. 그러다보니 난 아직 모내기도 못했어. 마을 일이라면 발벗고 달려와 자기일처럼 도와주는 마을 분들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야. 돈 많이 벌고 쉬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할거야.
△김옥예(60) 사암2리 부녀회장=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라고 지금의 남편을 이 동네에서 만나서 여지껏 여기서 살고 있어. 난 평생 사암리 흙에서 살다가 죽을거야. 조용한 시골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에 놓인 작은 징검다리 위를 건너던 어린시절이 눈에 선해. 우리 마을처럼 주민들 간에 단합이 잘되는 마을도 없어. 이장님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우리 모두 더불어 잘사는 마을이 됐음 좋겠어.
△이기찬(60) 사암2리 청년회장=콩 보리 밀 같은 곡식을 자급자족하는 촌마을이었지. 돌이 많아 어렸을 때 집집마다 망치로 돌을 깨서 내다 팔아 먹으며 근근히 사는 집이 많았었어. 초등학생때 한번은 과일 서리를 하다가 거름더미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재밌어. 예전에는 거름을 마을 한곳에 모아놨었거든. 지금은 절도지만 그당시에는 참 즐거웠던 문화였지.
△지찬근(61) 우렁이쌀 작목반장=지금은 동네에 아이들이 없지만 나 어릴 적에는 한 집에 애들이 열명 이상씩 있었어. 동네에 딱지치기, 비석치기, 말타기 등등 아이들 노는 소리가 떠나질 않았었지. 손주 7명이 있는데 손주들이 놀러오면 내가 어렸을 때 하고 놀았던 놀이를 가르쳐주고 있어. 난 우리마을의 장수마을 표지석을 사람들에게 자랑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 얼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남근석으로 보이기도 하거든. 신기한 돌이야.
△함종성(68) 전 사암2리 이장=1968년 군대 제대해서 처음 이 마을에 복숭아 나무를 심었지. 모두 60여그루 됐었던거 같아. 나무상자에 넣어서 시내 시장에 내다 팔았었는데 밀 보리 벼보다는 수익이 좋았어. 그때부터 복숭아 심는 농가가 많아지더라고. 한번은 대룡산 기슭에 소 200마리를 들여와 방목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소값이 폭락해 망해서 빚더미에 앉게 됐었지. 어쩔수 없이 집사람을 시내 순대국 가게에서 일을 시킨적이 있어. 근근히 살면서 순대국집을 차려서 17년동안 3남매 대학공부 시키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 안사람이 순대국집하기 전에 막내딸이 어렸을때 지 엄마 일하는 과수원에서 노래부르고 춤춰서 일하는 아줌마들 간식을 다 가져왔었어. 공부는 안하고 노래만 부르고 다니더니 결국에는 국악인이 돼 지금은 경기도립예술단 단원이 됐지.
△박영만(60) 3반 반장=1980년도에 시내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한 3년 정도 살았어. 그 당시에 왔었을때도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살갑게 대해 주던지 평생 시내에서 살면서 사귄 친구들보다 3년동안 이곳에서 사귄 친구가 더 많을 정도야. 이후에 직장 때문에 다시 시내로 이사를 갔었는데 퇴직하고 이곳 친구들이 그리워서 2009년에 다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지. 이장이 집을 하나 내줘 1년에 도지세 10만원만 내고 아내랑 살고 있어. 공짜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거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작년 겨울에는 마을 썰매장도 운영하면서 마을을 위해 일하고 있어. 사람 좋고 정 많은 이곳이 너무 좋아.
△최문식(59) 3반 영농조합법인 이사=6살때 홍천에서 부모님 따라 이곳으로 이사왔지. 1990, 1991년 최연소 이장도 했었지. 농촌건강장수마을 처음 지정됐을 때 마을 사물놀이 상쇠했던게 기억이 나. 3, 4년 전까지 버섯종자보급을 했었어. 그 당시에 전국 70여명이 있었는데 내가 전국종균생산협회 부회장까지 했었어. 지금도 귀농·귀촌인구가 전체 30%정도 되는데 마을 주민들끼리 화합도 잘되고 참 살기 좋은 마을이야.
△조남섭(61) 주민=시내에서 운수업을 하다가 귀농한지가 20년됐어. 이 마을에 같은 또래가 많아서 정착하게 됐지. 지금은 여기서 논과 밭을 합쳐 1만9,800㎡정도 농사를 짓고 있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이랑 우리 마을이 지금보다 더 잘살고 화합 잘되고 행복한 마을이 될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
△고민성(61) 전 새마을지도자·추진위원=서울에서 살다가 귀농한지 15년 정도됐어. 동네사람들 인심 좋고, 경치도 좋고,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고… 뭐 하나 안좋은게 없네(웃음). 난 우리 마을이 농촌과 도시의 장점을 모두 갖춘 마을이라고 생각해.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좋은데 이곳 사람들은 다 형제같이 지내고 있지. 모래와 돌이 많아서 이곳이 사암리라고 불린 것처럼 복숭아, 사과 배 등의 과수원이 우리 마을 주소득원이야.
홍현표기자 hphong@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