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법정에서 만난 세상]마음의 교집합 `일심동체'

김형훈 춘천지법 수석부장판사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이 있다. 주로 부부 사이에 일심동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비단 부부 사이에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어디든 서로 마음이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뜻하는 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일심동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네 글자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동그라미 두 개(혹은 여러 개)가 만나 하나의 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서로가 바라는 곳으로 함께 간다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렇다면 두 동그라미가 한마음 한몸이 되려면 어떡해야 하나, 그렇다. 동그라미들을 서로 조금씩 합치게 되면 소위 수학에서 말하는 교집합이 생긴다.

이 간단한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교집합이라는 것이 결국은 서로가 자신의 일부를 비워서 다른 동그라미의 일부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역에 다른 동그라미를 받아들일 공간을 일부러 비워서 만든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서만 살 수 없고 함께 가야 할 세상에서 서로가 자신이 완벽하다고 자신만이 옳은 동그라미라고 교만해서는 겉껍질만 더욱 단단해지고 교집합은 생길 수 없다. 이래서는 일심동체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튕겨내고 상처만 주는 그야말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참으로 많은 동그라미가 존재한다. 나에게도 여러 동그라미가 있다. 아직도 아내로부터 한 번씩 튕겨져 나와 모양을 구기지만 금방 따뜻한 온기로 혼자 있는 부분보다는 교집합으로 있는 부분이 훨씬 많은 동그라미. 매번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울화통만 터지다가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멋쩍게 다가오는 작은 동그라미들을 보면서 살며시 키높이를 낮추고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눈동자를 하는 동그라미. 그리고 14년째 법원에서 판사로서 재판에 임하여 온 동그라미 등. 그런데 그중에서도 마지막 동그라미는 혼자서 참으로 열심히 달리는 동그라미다. 그러다 보니 껍질이 딱딱하고 두꺼운 동그라미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그 동그라미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동그라미는 자신만 열심히 달리면 되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같이 교집합을 만들어 함께 가야 할 다른 동그라미가 있다는 것을.

다른 동그라미. “판사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희도 같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등으로 쉽지 않게 말을 꺼내는 당사자 또는 방청객의 목소리들. 그 목소리가 설익은 짜증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나의 가슴에 부드럽고 신선한 메아리로 울리고 있다. 재판을 마치고 난 당사자 또는 방청객들이 법원에서 나누어 준 설문지에 “용어가 어렵습니다. 판사님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등으로 기재한 내용. 그 내용을 보고 “아이고, 내가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이런 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아, 그렇구나! 그런 면이 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변화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야 이 동그라미에 다른 동그라미를 받아들일 공간이 조금은 제대로 비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은 그 교집합의 크기가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머지않은 날에 다른 동그라미의 믿음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담을 수 있을 정도로는 커지지 않을까? 야구에서 3할 타자면 뛰어난 타자다. 일심동체는 아니라도 3분의 1 심동체는 어떨까? 가야 할 길이 아직 멀고, 해야 할 일이 아직 많겠지만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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