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땅주인 요구에 수십년 터전 한마을 21가구 전체가 쫓겨날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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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거진10리 1반 마을 전경.

고성 거진읍 거진10리 1반

주민들 관리인에 텃도지 내며 거주

관리인 숨지자 토지주 무단점유 소송

“텃도지 인정되지만 임차 증거 없어”

1·2심서 패소 법원서 강제집행 예고

토지주 “5년간 토지 인도 기회 줘

정당한 권리 행사 위해 강제집행”

“수십년 동안 아들딸 키우며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라 한숨만 나옵니다.”

고성군 거진읍 거진10리 1반 주민들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마을 전체 21가구가 춘천지법 속초지원으로부터 '부동산 철거 및 토지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자진 철거한 후 토지 소유주에게 토지를 넘겨주지 않으면 예고 없이 강제집행하고 그 비용을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시한은 지난달 30일까지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갈 곳이 없어 그대로 머물고 있지만 예고된 기일이 지남에 따라 강제집행 인력과 장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공포 속에서 매일 속만 태우고 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민들에 따르면 6·25전쟁 후 고성지역이 수복된 뒤 현재의 위치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곳은 1개 필지의 야산에 불과했다. 갈 곳 없는 이들이 1960년대부터 하나둘씩 모여들어 텃도지(터를 빌린 값으로 내는 세)를 주고 비탈진 야산을 개간해 집을 짓고 살아오는 동안 토지 소유주가 4차례 바뀌었다.

현재 토지 소유주는 1988년 이 토지를 매입한 뒤 이 마을에 사는 주민 1명을 관리인으로 뒀다. 하지만 2013년 관리인이 숨지자 토지주는 마을의 모든 가구를 상대로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주민들은 텃도지를 매년 관리인에게 내고 정당하게 거주하고 있다는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 사망한 토지 관리인 가족을 찾아가 장부를 요구했으나 모두 태워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이들은 텃도지를 낸 사실 등을 증명할 길이 없어 2015년 1심과 2016년 2심 재판에서 모두 패소했다.

1·2심 법원은 “원고와 피고의 변론 취지를 종합하면 토지 관리인에게 금원(텃도지)을 지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토지 임차를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억울한 주민들은 대법원에 상고할 생각도 했으나 2,000만원에 달하는 변호사 선임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상고 포기 후 2년여 만에 강제집행 예고장을 받은 것이다. 최석만 마을대표는 “토지 소유주가 퇴거를 요구하면서 한 마을 전체가 공중 분해될 처지에 놓여 있다”면서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고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하루하루를 한숨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지주는 “지난 30년간 토지를 무료로 빌려주다시피 하고 지난 5년의 재판을 통해 기회를 줬는데도 토지를 인도하지 않고 있다”며 “토지주의 정당한 권리 행사 차원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성=권원근기자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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