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지역에서 '도치' 또는 '심퉁이'라고 부르는 생선은 겨울이 제철이다. 뚝지라는 이름이 표준어로 통용되지만 주산지인 영동에서는 흔히 입술이 두꺼워 심술맞아 보인다는 뜻에서 심퉁이라는 이름으로 퉁친다.
겨울에 잡힌 심퉁이는 김치를 넣고 두루치기를 하거나 알탕을 해 먹거나 숙회로도 자주 먹는다. 알만 따로 삶아 먹어도 별미인데 그 맛에 비해 전국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못난이 3형제로 분류되는 아귀나 곰치 역시 외모가 볼품없지만 심퉁이는 이들에 비해 크기가 가장 작고 주산지가 북부 동해안으로 한정돼 있다 보니 유명세가 덜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다만 영동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심퉁이를 자주 먹어본 경험상 식감이나 맛은 어느 생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심술맞은 입술 탓에 심퉁이로 불리지만 물 위로 올라온 모습을 직접 보면 두꺼운 입술이 다소 측은하게 느껴진다. 보기와 달리 심퉁이는 의외로 강한 생존력을 지녔다. 심퉁이의 배에는 제법 커다란 흡반이 달려 있다. 심퉁이는 이 흡반으로 바다 밑 바위에 붙어 차가운 동해의 강한 조류를 버텨낸다. 우습게 보일지라도 실은 '존버(악착같이 버틴다는 뜻의 신조어)'의 표상이다.
심퉁이에 대한 얘기를 좀 길게 꺼낸 이유는 올 한 해 강원도민이 심퉁이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2019년 강원도민들은 '심퉁이'처럼 '존버'하며 살아왔다.
환경협의에서 고배를 마셨던 춘천~속초 동서고속철은 버티고 버텨 전략환경영향평가 통과라는 성과를 냈다. 오색케이블카는 비록 좌초 위기에 몰렸지만 행정심판 청구에 이어 행정소송까지 예고하면서 버텨내고 있다.
정선의 주민들은 지역의 유일한 올림픽 유산인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곤돌라를 지키기 위해 산 정상에서 차가운 산바람과 혹한을 버텨내고 있고 올 4월 동해안 산불로 삶의 기반을 잃고 벼랑 끝에 몰린 피해주민들은 한국전력공사와의 피해보상 협의에서 큰 의견 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역시 버텨내고 있다.
지난해 남북관계 개선으로 잠시나마 훈풍이 불었던 접경지역은 올해 국방개혁 2.0에 따른 부대 해체·이전에 이어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이중고를 악착같이 참아내야만 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버티고 버틴 심퉁이는 다 크면 30㎝까지 자라 제법 위풍당당한 모습을 갖춘다. 그러나 심퉁이를 요리하기 위해 해체를 해보면 그 큰 덩치의 3분의 2는 알이다. 자신의 몸의 3분의 2를 차지한 배 속 알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바위에 붙어 버티고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원도 주민들이 올 한 해 버텨내면서 얻어내고자 했던 것은 결국 지역의 후대를 위해 남겨줄 유산이었다. 강한 생존력을 지닌 심퉁이를 측은하게 본 것이 오산이었다면 강원도 주민들의 의지를 우습게 보거나 폄하하는 것 또한 오산일 수 있다.
올 한 해 주민들이 혹독하게 버텨내야만 했던 어려움들이 2020년에는 성과가 되길 바란다. “2019년 한 해 300만 강원인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